‘제2의 나향욱’을 경계하자
‘제2의 나향욱’을 경계하자
  • 안태희 기자
  • 승인 2016.07.13 2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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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안태희 취재2팀장(부국장)

나향욱 교육부 전 정책기획관이 ‘민중이 개·돼지와 같다’고 한 말을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인 그에게 들으니 뭐라고 할 말도 없다.

자꾸만 그 말을 되새기는 게 자존심 상해 아예 언급조차 하기 싫지만, 그 충격파는 국민에게 상상이상의 상처를 오래도록 남길 것 같다.

스스로는 과로와 과음 탓으로 돌렸지만, 기자에게 자신의 소신(?)을 자못 진지하게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으니, 그의 철학적 왜곡과 심성의 빈곤만을 탓하기에는 우리나라의 공무원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긴다.

공무원은 선망의 직업이다. 예전처럼 가난한 집 자식이 대학 갈 학비가 없어 할 수 없이 ‘면서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던 시대가 아니다. 현직 변호사가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서 낙방하는 일까지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고, 또한 소신 있게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 의미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이 쇄신하고, 항상 긴장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정래 소설가가 말하는 ‘기생충’, ‘제2의 나향욱’이 될 수 있다.

“국민의 99%가 개·돼지 새끼들이라면 개·돼지가 낸 세금 받아놓고 살아온 그는 누구냐. 그는 개·돼지에 기생하는 기생충이거나 진딧물 같은 존재 아니냐”라는 조 작가의 질타를 새겨들어야 한다.

부산의 학교전담경찰관들이 여고생에게 1년 동안 2만번이나 문자메시지나 전화통화를 하고,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다는 소식은 이제 우리나라에 믿을만한 데가 남아 있나라는 불안감을 몰고 왔다.

지금도 각급 학교 정문에는 학교전담경찰관의 얼굴과 전화번호를 담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던데, 격무에 시달리는 이들 경찰관의 얼굴에 먹칠을 해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이제는 어떤 학부모나 학생들이 학교전담경찰관을 믿겠는가.

청주에서는 하위직 공무원들이 청주시의 보조금을 받는 업체에 문자로 협박해서 중국 여행경비를 뜯어냈다가 적발돼 ‘조폭 공무원’ 아니냐는 비아냥을 샀다. 은근히,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도 아니고, 대놓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부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이 이 정도구나 하는 것을 시민들이 알게 되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은 개미같이 열심히 일한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 1770시간보다도 많고,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심지어 집에 가서도 상사가 쏴대는 ‘카톡’ 메시지 때문에 일을 한다고 하니, 직장과 집의 구분은 의미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팍팍한 삶 속에서 세금 내고,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국민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공무원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공무원들이 1%가 아닌 99%를 위해 일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훨씬 자랑스러울 텐데 말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기강을 바로잡고, 국민과 시민에게 봉사하는 진정 공복의 자세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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