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43>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4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1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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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의 10년 유랑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환 영화 '트로이'의 메인 카피는 트로이 전쟁과 유사 이래 인간이 벌인 수많은 전쟁을 이렇게 정의했다.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불멸의 신화가 깨어난다. 마침내 현실이 된 불멸의 신화! 유사 이래 인간은 늘 전쟁을 해왔다. 권력을 위해, 영광과 명예를 위해, 그리고 때로는 사랑을 위해…' 트로이 전쟁을 그린 호머의 서사시를 볼프강 피터센이 연출한 블록버스터 '트로이'는 2억달러의 제작비와 초호화 캐스팅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스타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스 역을 맡았고, '헐크'의 '에릭 바나'와 '반지의 제왕'에 나온 꽃미남 '올랜도 블룸'이 각각 헥토르 왕자와 파리스 왕자 역을 맡아 열연했다. '반지의 제왕'에서 보르미르 역을 맡았던 '숀 빈'은 오디세우스 역으로 등장했다. 기원전 1193년, 고대 그리스 시대.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사랑에 빠져 트로이로 야반도주를 하면서 대서사극의 막이 오른다.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은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 형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규합하여 트로이를 공격했다. 트로이는 단 한 번도 정복된 적이 없는 요새였다. 그리스군은 무적의 아킬레스까지 동원했지만, 아킬레스가 아가멤논과의 불화로 전의를 상실하자 전쟁은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거대한 목마를 이용하여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방심한 트로이군이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이자 목마에서는 무장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스군의 승리에는 '트로이의 목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에서 눈부신 공을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는 항해 도중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외눈 거인을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포세이돈이라면 바람을 부르고 파도를 일으키며, 온 땅을 해일로 뒤덮는 신이 아니던가, 포세이돈의 원한을 사게 된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케 섬으로 가는 항해에서 10년 동안이나 끈질기고도 집요한 방해를 받게 된다.

"폴뤼페모스의 섬을 출발하고 나서 한 열흘쯤 되었을까요, 갑자기 모든 바람이 멎어 버렸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범선에서의 살인은 거의가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이타케 섬의 뱃사람들은 폭풍보다 무풍을 더 두려워하지요. '역풍보다 무풍'이라는 옛말처럼 말입니다."

선원들의 공포어린 독백처럼, 오디세우스도 기상학에서 말하는 악명 높은 적도무풍대(赤道無風帶)를 만났다. '범선의 모든 선원들이 저주한 바람 없는 좁은 지대'인 적도무풍대에서는 적도상의 고온(高溫)이 굴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적도상의 고온이 되돌아오는 북동풍과 남동풍을 끌어당겨 수 천m 상공에서 합류시키기 때문에 해수면에는 바람이 전혀 불지 않게 된다. 무풍대를 만난 뱃사람들은 거울처럼 잔잔해진 바다를 빠져나가기 위해 불볕더위 속에서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

   
오디세우스도 무풍대를 빠져 나가기 위해 북풍이 불기만을 고대하며 전력을 다해 노를 저었다. 그가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 도착한 곳은 바람의 신 아이올리스의 섬이었다. 섬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놋쇠 담장으로 둘러쳐진 아이올로스의 궁전이 있었다. 궁전의 뒷산에는 깊은 동굴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바람이-산들바람, 돌개바람, 골바람, 마파람, 하늬바람, 된바람, 높새바람-갇혀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었다.

"바람의 신이시여! 이 섬 근처에서 바람이 불지 않아 크게 고생을 했습니다. 이제 바람신께서 저희들의 고향 이타케 섬으로 가는데 도움이 될 바람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태풍의 한가운데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 것처럼 바람신이 사는 곳 주변에는 바람이 없는 법이다. 원래 동-서-남-북풍을 주관하는 신들이 따로 있지만, 나도 조금은 바람을 부릴 수 있다. 바람을 한 자루 준비하였으니 필요할 때마다 자루를 열어 돛을 부리도록 해라. 하지만, 이 바람 자루를 절대로 부하의 손에 맡기면 안 된다."

바람신은 황소를 잡아 만든 가죽 자루에 바람을 담아 오디세우스에게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바람 자루의 주둥이를 가죽 끈으로 단단히 동여매고 배에 올랐다. 아이올리스 섬을 출발하여 열흘 동안은 뱃길이 순조로웠다. 모두들 금방 고향에 도착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어느날 오디세우스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닥쳤다. 돛대는 부러지고 배는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고 있었다. 급히 바람신이 준 가죽 자루를 찾았으나 주둥이를 묶었던 가죽 끈이 풀어져 있었다.

"저희들은 가죽 자루에 금은보화가 들어있는 줄 알았습니다. 살짝 열어보려고만 했는데 그만…"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전리품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는데도 부하들은 오디세우스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곧바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10년 동안이나 바다에서 유랑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가 바다의 유랑생활을 더 하게 된 것은 바람 탓이었을까, 아니면 부하들의 욕심 때문이었을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 때문이었을까, 신화는 상상의 바다로 우리를 자꾸만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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