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이 지배하는 천안 문화
행정이 지배하는 천안 문화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4.03.16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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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 <천안·아산>

지난 14일 오전 10시30분 천안시의회 대회의실. 천안시 복지문화국장, 문화관광과장, 문화예술팀장 등 천안문화재단 관련 공무원들이 초조하게 시의원들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 의원간담회의 뜨거운 감자는 천안문화재단의 ‘멋대로 식’ 조직개편. 때문에 의원·공무원 간 설전(舌戰)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올 초 부임하자마자 된서리를 맞고 있는 신재식 복지문화국장. 그의 문화재단 조직개편 설명이 끝나자 의원들의 가시돋친 질문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첫 질문자는 조강석 의원. “지난해 재단 예산 심의 때 문화관광과장(현 총무과장)에게 조직 개편과 관련해 우려를 나타냈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도대체 시는 의회 역할에 대해 생각이 있는 거냐?” 이어 “재단이 마음대로 직급을 올리고 직제를 만드는데, 현재 의회 의견을 재단에 반영할 제도적 장치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신 국장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조 의원이 “재단 조례를 개정해 드리면 (의원들 의견 반영이) 되겠습니까?” “…….”(신 국장)

긴장감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본부장 임기가 애초 5월 14일인데 현 시장 임기는 언제까지죠?”(조 의원), “6월 30일입니다”(신 국장), “얼마나 차이가 나죠”(조 의원), “의원님이 계산해 보시죠?” 신 국장의 ‘썰렁한’ 대답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 의원이 말을 이었다. “46일입니다. 모두가 알아야 하는 사항이라 물어본 겁니다.” 재단 최고직인 본부장을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장 임기 내에 꼭 바꿔야 하느냐는 얘기다.

신 국장은 조직개편 필요성에 대해 공무원(축제팀장) 복귀에 따른 업무 공백을 이유로 들었다. 또 재단 기틀을 잡기 위해선 공무원 출신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누차 강조했다. 그래서 자신도 관심을 갖고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시 공무원의 본부장·사무국장 내정설이 나도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황천순, 주일원, 전종한 의원이 질문을 이어갔다. 강도는 더욱 세졌다. 황 의원은 “그렇게 문화재단에 행정 관료가 필요하다면, 왜 재단을 만들었냐”며 돌직구를 날렸다.

주 의원은 재단이 멋대로 정원(사무국장 신설)을 늘리는데 그 돈은 어디서 나오냐고 물었다. “시가 출연합니다” “시 출연금은 누구 돈입니까” “……” “바로 시민 세금입니다.” 주 의원과 신 국장 대화를 듣던 의원들 사이에 탄식이 나왔다.

천안문화재단은 천안시의 꼭두각시다. 이날 의원간담회에는 본부장 등 문화재단 관계자가 직접 나와 답변하는 게 옳다. 시 문화담당 국장·과장·팀장이 나와 답변할 자리가 아니다. 문화재단이 천안시 지휘대로 움직인다는 걸 시가 스스로 확인시켜준 셈이다.

천안에 문화는 없고 행정만이 있다. 문화도 행정으로 움직이려 한다. 문화예술계도 시의 ‘행정 지도’ 대상이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꿈틀대는 문화예술계를 공무원이 어떻게 지도하겠다는 건가. 지도가 아니라 ‘지원’에 머물러야 한다.

같은 날, 한 언론에 천안시교향악단의 지휘자·연주자들 갈등이 적나라하게 보도됐다. 상임지휘자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연주자들이 시에도 여러 번 상임지휘자 전횡에 대한 문제점을 호소했다고 한다. 해결 기미가 안 보이자 이들은 지난달 11일 지휘자가 폭언·협박했다며 천안서북경찰서에 고소했다.

천안 문화예술계가 졸지에 콩가루 집안이 됐다. 총체적 위기다. 문화예술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살린다며 문화재단을 만들더니 그 꼭대기에 공무원을 앉히려는 천안시. 이런 생각이 지속되는 한 위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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