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한가운데
김우영 <작가·한국문인협회>우리나라 사람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부둥켜안거나 끌어안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귀여운 어린이를 봐도 끌어안고 볼에 얼굴을 비비거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끼리도 서로 끌어안고 어쩔줄을 몰라 한다.
우리 민족은 아무래도 뜨거운 마음을 가진 정열의 민족이다. 서로 만나 손끝과 손끝이 닿아 마음을 나누고, 끌어안고 심장과 심장끼리 부딪쳐 피의 뜨거움을 나눠야만이 후련하다. 외국 사람들처럼 마누보고 눈으로만 얘기하기에는 재미가 없다. 손이라도 만지며 뜨거움을 나눠야 하는 민족이다.
이런 일은 술자리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외국인들처럼 스스로 자기 주량만큼의 술을 조용히 따라 먹는 것이 아니다. 서로 상대방에게 권주하며 따라주고는 이른바 건배(乾杯)를 힘차게 합배(合杯)하고는 호방하게 마신다.
건배란 술좌석에서 서로 잔을 높이 들어서 경사나 상대방의 건강 또는 행운을 빌고 마시는 일이다. 끼리끼리 어울려 앉아 술을 가득 붓고는 술잔이 깨지도록 부딪치고 쭈욱 술을 마신다. 이렇듯 술잔을 부딪치며 마시는 습관이 몸에 밴 우리는 어느 장소, 어느 모임을 가나 그저 건배를 한다. 누가 먼저 선창을 하든 같이 앉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부담없는 건배를 힘차게 외친다.
건배(乾杯)도 긴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여 전해져 온다. 흔히들 건배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어휘는 ‘…위하여!’이다. 맑고 건강한 미래지향형의 뜻으로 어느 장소에서건 잘 어울리는 말이다.
실제 건배란 말은 영어로 토스트(Toast)라고 한다. 토스트란 말의 유래는 17세기 후반, 찰스 2세 때 어느 약수터 연못 안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고 한다. 이 미인에게는 많은 남성들이 관심을 갖고 접근을 했는데 그중 한 남성이 연못물을 떠서 그녀를 위해서 건배를 했다. 그러자 이것을 보던 한 술꾼이 자신은 술은 필요없고 술 속에 있는 토스트를 먹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술에 향기를 돋우기 위해서 토스트 같은 빵조각을 넣었던 것이다. 연못의 물을 술로, 미인을 토스트로 비유한 대화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미인을 토스트라 하고 훗날 건배라는 뜻으로 바뀌어 전해져 온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 건배의 명칭을 이렇게 쓴단다. 영국이나 호주는 치어즈(Cheers), 네덜란드는 프로스트(Proost),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은 스콜(Skol), 핀란드는 키피스(Kippis), 미국은 굿헬스(Good health), 토스트(Toast), 소련은 짜로세츠다로비예(당신의 건강을 축하하며), 프랑스는 아보트르 상태(Avotre sante).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여럿이 건배를 했을 경우에 한 잔을 쭈욱 다 마시고 상대방한테 잔을 권하는 것이 주법(酒法)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자기의 주량이 넘게 되면 반배(半杯)라고 말하고 반 잔만 마셔도 주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반배도 많을 경우엔 수의(隨意)라고 말하면 자기 주량껏 마시게 해달라는 뜻이다. 상대방이 잔을 들어 건배를 말하면 자기 잔을 들며 술은 마시지 않아도 주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건배잔은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권주하는 잔을 안 마시면 주법에 어긋난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냥 술잔을 권한다. 못 하거나 안하거나 하는 것은 그저 소인의 소치라고 치부하는 것이 우리네 주석의 모습이다.
어쨌건 우리는 외국의 경우처럼 자기의 주량만큼 자신이 자작하는 멋없는 주법이 아니다. 서로 마음에 맞는 부류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앉아 권커니 잣커니 주고 받으며 건배를 힘차게 외치며 마신다.
우리는 뜨거운 가슴과 정열, 희열을 지닌 ‘쨍그랑 민족’이다. 자, 쨍그랑 민족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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