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59>
궁보무사 <159>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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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만들 하세요. 원하는 대로 해드릴 것이니."
7. 엎치락뒤치락

"으아악! 아, 아이고!"

신나게 얻어맞던 주성이 갑자기 얼굴이며 온몸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두 손 모아 싹싹 빌어대기 시작했다. 강치 일행 중 어느 누가 화살 한 개를 집어가지고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은 주성이 아까 이들을 향해 쐈다가 제대로 맞히지도 못 한 채 그냥 맨 바닥에 꽂혀진 화살 중 하나였다.

다가온 사내는 번개 같은 동작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주성의 얼굴을 한팔로 휘감아 버리더니 날카로운 화살촉 끝을 그의 눈앞에 들이대며 주성의 아내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이 화살은 아까 이 자가 우리를 죽이려고 위에서 쐈던 것이요. 하마터라면 이것이 우리 얼굴이나 가슴, 배, 등, 심지어 눈알에 꽂혀질 뻔 했소이다. 오줌을 쏴 갈기고 화살을 쏘고, 심지어 뜨거운 물을 끼얹어가며 잔혹스럽게 우리를 죽이려고 했던 자를 우리가 그냥 곱게 놔둘 수가 있겠소 어차피 우린 죽을 몸, 죽을 때 죽더라도 이 인간과 함께 죽겠소!"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한 거 아니에요 제발, 저의 남편을 살려주세요! 아니, 다만 때리는 거라도 제발 멈춰달란 말예요."

주성의 아내가 간절히 애원하듯 두 손을 모아가지고 이렇게 다시 외쳤다.

"아무튼 부인께서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오. 부인의 결심이 설 때까지 우린 이 자를 오뉴월 복날 개 잡듯이 마구 두들겨 패겠소!"

말을 마치자마자 사내는 또다시 주성을 닥치는 대로 차고 때리기 시작했다.

"으으악! 아이고! 나 죽네. 부인! 어떻게 좀 해봐요. 아이고!"

주성이 비명을 내지르며 또다시 엄살을 크게 떨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만! 제발 그만들 하세요.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 것이니…."

주성의 아내가 마침내 큰소리로 외쳤다.

"저, 그 그럼. 부인께서 그렇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이옵니까"

강치 일행 중 어느 누가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뜨며 주성의 아내를 쳐다보았다. 주성의 아내는 곧바로 대답해주기가 조금 뭐했던지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는 잘록한 허리 부근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잠시 흔들어보고 나더니 주성의 아내는 이윽고 모종의 결심을 한 듯 웅덩이 안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다시 열었다.

"여러분들께선 설마하니 제가 여러분들 앞에 주저앉아서 더러운 육수(肉水)를 뽑아내는 모양만 구경하시고자 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 아니. 그것만으로도 우린."

강치 일행 중 어느 누가 무심코 이렇게 말을 꺼내려다가 바로 옆에 있던 동료에게 즉시 제지를 당했다. 강치를 비롯하여 눈치가 조금 있는 자들은 지금 저 여자(주성의 아내)의 간절한 속마음을 대강이나마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그건 맞는 말이에요. 솔직히 우리는 부인께서 저희들을 향해 쑥스러운 자세로 앉아서 퍼부어대는 육수 맛을 보기를 원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적으로 얘기해 봅시다. 부인께서는 여기로 직접 내려오셔서 남편의 잘못을 우리들에게 정중히 대신 사과하시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라면 저희들이 마땅히 받아들여야할 것이고, 그후 부인과 남편 분을 안전하게 다시 올려 보내드리겠습니다."

강치가 점잖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머! 방금 하신 그 말씀, 제가 믿어도 되는 건가요"

주성의 아내가 아무래도 못 믿겠다는 듯 두 눈을 예쁘게 살짝 흘기면서 물었다.

"여보! 당연히 믿어야하지 않소 자, 어서 여기로 내려와서 이분들에게 내 잘못을 정중히 대신 사과드리세요. 그래서 나랑 얼른 위로 올라가자고요."

하도 얻어맞다보니 온몸에 성한 곳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주성이 자기 부인을 향해 또다시 소리쳤다. 그러나 주성의 아내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매서운 눈초리로 강치일행과 자기 남편 주성을 내리 쏘아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강치의 얼굴 위에는 싱글벙글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후후. 두고 봐! 저 계집은 지독하게 남자를 밝히는 색녀중의 색녀일 것이니.'

강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저혼자 중얼거렸다. 주성의 아내가 지독하게 남자를 밝히는 색녀일 거라고 사실 강치의 이러한 추리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대로 들어맞는 말이었다. 천하일색 주성의 아내는 처녀부터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린 소녀 때부터 남자라면 누구를 가리지 않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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