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협력하여 3장 또는 5장을 치는데 화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추운 겨울 동안 100여장의 가마니를 쳤다고 한다.
정부는 해마다 '고공품'(藁工品짚이나 풀줄기 등으로 만든 수공품, 가마니 돗자리 따위) 수매라고해서 가마니와 새끼를 농민들로부터 사들여 정부양곡을 도정해(찧어) 가마니에 담고 비축하기도 했고, 홍수때 제방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방품으로 비축하기도 했으며, 이재민들이 생기면 천막을 치고 깔개로 사용하기도 했다.
정부가 사들이는 가마니는 농가 한세대당 50장정도이고 새끼는 3타래, 가마니 한장 수매 가격은 35원, 지금 수준으로 3500원 정도라고 한다. 가마니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개량 확대되어 전국적으로 통일된 규격을 생산, 가마니에 넣은 곡식의 량이 일정해 도량형으로 인식되기도 했는데 쌀일 경우 가득채우면 90, 적당량은 80정도로 통용돼 왔다. 즉 쌀 1가마는 80, 반가마는 40 등으로 인식돼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를 기준으로 값이 통용돼으로 팔고사는 상행위가 이뤄졌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햇짚을 엮어 초가지붕을 해이고 나면 남은 짚은 좋은 것은 가마니를 치고 나머지는 쇠죽을 끓이는 여물로 쓰였다.
가마니는 사랑방이나 넓은 마당에서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지고 각 가정에서는 부녀자들까지 가마니 짜기가 시작돼 겨울내내 가마니를 쳐냈다.
오랫동안 폭넓게 사용되던 가마니는 합성수지 나일론
부대(자루)가 대량으로 나오자 가마니 사용이 점차 줄면서 지금은 아예 없어지다시피 했다. 합성수지 부대는 값이 싸고 질기고 튼튼하며 부피가 적고
가벼워 인기를 끌었다. 결국 가마니가 뒤안길로 사라지자 가마니를 치던 가마니틀도 창고속에 방치되거나 골동품상에 팔려 나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