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질병이 죄가 되는 세상
가난과 질병이 죄가 되는 세상
  • 오창근 <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 승인 2012.10.2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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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충북참여연대 사회문화팀장>

‘00야, 00야 잘 살아라. 돈이 무엇이냐 돈 없는 세상.’

엊그제 서울 은평구청 앞 화단에서 64살 이 모씨가 구청 건물 8층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유서의 내용이다.

TV 화면에 비친 유서 내용이 눈에 박혀 한동안 떠나질 않는다. 스물한 글자, 64년의 삶을 마무리하는 유서치고는 지나치게 짧다.

그러나 유서의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5년 동안 찾아와보지 않는 자식에 대한 애증과 단칸방에서 15만 원 남�!� 돈으로 연명해야 했던 가난의 굴곡진 삶을 드려다 볼 수 있다.

한해에 이처럼 자살하는 노인의 수는 4천 명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하루 34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중에 11명은 65세 이상의 노인이 자치하고 있는 셈이다. 자살이유로는 경제적 빈곤과 신체적 질병, 사회적 고립 그리고 가족과의 불화 등을 꼽고 있다.

청소년이 학업에 대한 부담감과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로 비관해 목숨을 끊고, 장년층이 실직 등의 문제로 자살하는 데 비해 노인의 자살은 이와 달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질병에 대한 비관도 있지만, 때론 배우자의 질병을 고민하다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예도 있고, 암 말기와 같이 치유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 가족 특히, 자식에게 경제적 짐을 지우기가 싫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일반적인 자살의 경우 충동적인 경우가 강한 데 비해 노인의 자살은 계획적으로 진행 돼 ‘침묵의 자살(Silent Sui cide)’이라 하여 자살 증후를 사전에 발견하기 어렵다고 한다.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의 말에 따르면 “응급실에 실려 온 자살 시도자와 실제 사망자를 비교해보면 젊은 사람들은 평균 10~20번의 시도 끝에 1명이 실제 사망하지만, 노인의 경우 그 비율이 4대1 수준으로 매우 높다.

젊은이들이 충동적으로 칼로 손목을 긋는 등의 다소 성공률이 낮은 자살수단을 사용하는 것에 반해 노인들은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맹독 음독 등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젊은 층에 비해 쇠약해진 육체적 조건도 노년층의 자살률이 높은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던 세대와 달리 가족해체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경제적 빈곤과 질병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비를 지원받던 노인이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혜택 대상에서 제외 그로 인한 상실감에 자살을 선택하는 등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 노인 자살을 봐야 한다.

이런 가운데 노원구가 2009년 서울시 자치구 25개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였으나 실업자 및 청소년, 홀몸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자살 취약계층에 대한 ‘마음건강평가’를 실시한 후 자살예방팀을 발족해 자살 위험성이 높은 사람을 ‘주의관심군’으로 분류, 지속적인 상담활동을 벌인 결과 자살률이 급격히 낮아졌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노인자살 문제를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인식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어려워진 경제 탓에 청년 일자리도 부족하고, 정년도 채우지 못하고 명예퇴직을 해야 하는 중·장년층, 그리고 직장문제, 생활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자식이 전적으로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 책임의 한계를 점점 넘어서고 있다.

생의 황혼에서 인간의 존엄성마저 짓밟는 노인자살률 증가는 미래의 우리 모습이다.

‘노인 한 명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노인의 역할과 사회에 대한 공헌은 평가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사회를 지탱해온 주역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사회가 미래의 우리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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