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추석,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2.09.2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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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문득 고개를 들어 추석을 앞으로 커다랗게 차오르고 있는 둥근 달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까요. 그러면서 우리는 살아있음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얼마나 느끼고 있나요.

어느새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 차례나 한반도를 덮친 태풍으로 인한 상처의 깊이가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으나 그래도 추석은 한숨보다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할 일입니다.

잘 익은 배 한 알이 5천원을 넘나드는 살인적인 물가고로 마냥 떨리기만 하는 마음으로 추석 대목장터를 황망하게 서성거린다 해도 추석은 그런대로 기다려지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채워져야 마땅한 일입니다.

혜민스님은 그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음표와 음표 사이의 거리감, 쉼표 때문입니다. 말이 아름다운 이유는 말과 말 사이에 적당한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쉼 없이 달려온 건 아닌지, 내가 쉼 없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때때로 돌아봐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추석은 혜민스님의 말씀과 참 닮아 있습니다. 씨 뿌리는 봄부터 한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의 수고로움을 스스로 위로하면서 결실을 만들어 낸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며, 가족들의 그리운 품이 기다려지는 것. 추석에는 이런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살벌한 범죄에 대한 걱정과 청년실업 등에 대한 근심, 불안하기만 한 정치일정 등으로 세상에 즐거운 일이 없다는 푸념에 휩싸여 있습니다. 또 그런 이유들로 인해 다가오는 추석이 지겹다거나 차라리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불평과 불만 역시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혜민스님은 또 어느 일간지에 쓴 글을 통해 "내가 지금 불안하다는 것을 부정하고 계속 저항하면 공황장애로 전이가 된다. 슬픔을 억누르고 저항하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반대로, 상처로 인해 힘들어 하는 현재 내 모습을 자비의 눈길로 온화하게 받아들이면 점점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좌절과 실망, 슬픔을 완전히 없애서 생긴 변화가 아니라 그것들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원숭이처럼 불안으로 날뛰던 마음이 고요해지며 얻게되는 평화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겠지요. 추석이라고 해서 당장 눈앞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 상처 따위가 스르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상처는 자꾸 들쑤시면 좀처럼 낳지않고 악화되는 법. 우리가 참으로 오랜만에 나서는 귀향길을 짜증 대신 설레이는 만남에 대한 부푼 가슴으로 맞이한다면 추석은 그런대로 기쁨이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게임에 참가한 인원보다 적은 개수의 의자 둘레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재빨리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살아남는 <의자놀이>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자놀이>를 자본주의의 속성에 따른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여기는 것과 그저 여럿이 어울려 즐기는 놀이로 생각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의자를 차지하지 못하면 실패와 좌절로 이어지는 극단은 여럿이 함께 즐기는 게임으로의 즐거움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추석은 그런 것입니다.

바쁘게 옥죄이는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두고 잠시 멈추어 자신과 주변을 차분히 돌아보는 것. 그 쉼표 같은 넉넉함만으로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즐거운 여유가 추석입니다. 그리고 그리웠던 부모형제의 따뜻한 품에서 사랑이 가득 넘쳐나는 눈빛에서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추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번 추석에는 잠시 멈춤을 만끽하세요. 그리고 고요한 눈길로 내 마음을 헤아리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찾아 볼 일입니다. 혹시 압니까. 가족의 따뜻한 손을 잡고 휘영청 둥근 달을 바라보는 순간,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 찧는 토끼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부르며 즐겁기 그지없는 말춤을 추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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