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과거사'를 묻지 말자
더이상 '과거사'를 묻지 말자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2.09.26 2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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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지난 24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한 ‘과거사’사과가 계속 입방아에 오른다.

대표적 보수 논객인 조갑제씨는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씨는 아버지를 옹호하고 그 평가를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어떻게 사람의 생각이 이 짧은 기간에 180도 바뀔 수가 있는가”라며 “표를 얻기 위한 정치쇼”로 평가절하했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조씨는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양심을 버리고 지지 세력을 배신하고 아버지와 조국을 깎아내림으로써 표를 구걸한 이가 당선된 예는 없다”는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고 장준하 선생 아들 등 유신정권 피해 유족들도 26일 “진정성이 없어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사람이 모두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 평가를 내놓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언론은 박 후보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들이 그가 대통령이 되려면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예비후보 시절 유신 등에 대해 긍정적ㆍ부정적 평가가 있는 게 사실이고 또 5ㆍ16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아버지의 과(過)를 지적하길 원하는 여론이 일었다. 지지도가 떨어지자 급기야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입장을 ‘후퇴’시켰다.


 그러나 그는 회견문에서 사과에 이르기까지의 고민스러운 속내를 드러냈다.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국민들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시는 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을 원하시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등.


 아버지에 대한 이해를 구하려는 모습도 역력했다. 그는 “건국 이후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비약적 발전상을 일깨운 후 “우리나라는 절대 빈곤과 북한의 무력위협에 늘 고통을 받고 시달렸다”고 1960, 70년대 배경 설명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은 경제발전과 국가안보를 가장 시급한 국가 목표로 생각했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희생과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했다.


 박 후보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을 “제 생각의 근간(根幹)을 만들어 주신 분”으로 회상했다. 그는 이번 회견서도 “아버지께서 후일 비난과 비판을 받을 것을 아셨지만 반드시 국민을 잘살게 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목표와 고뇌가 진심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아버지 입장을 이해하려 했다.


 아버지를 두둔하는 딸을 뭐라할 순 없다. 우리는 효(孝)의 나라다. 많은 역사적 순간마다 효가 역사 인물들을 움직여 온 게 사실이다. 가끔 나라에 대한 충(忠)과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지만.


 이젠 박 후보에게 과거사를 그만 묻자. 위에서 보듯이 아버지 허물이 나라를 잘 되게 하려는 선의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마당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 이번 기자회견을 가진 이유가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박 후보는 많은 국민들이 가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과는 아직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이 가진 오래된 생각은 일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박 후보가 사과를 하지만 진정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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