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으로 제작한 피에타
외상으로 제작한 피에타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2.09.1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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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그 돈으로 참 잘 만들었다. 만든이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영화제 심사위원들을 충분히 홀릴만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 '피에타' 얘기다.

순제작비 1억5000만원이 투입된(아주 적었다는 뜻) 이 영화는 지난주 헐리우드의 대작들과 극장에서 맞붙어 당당히 이겼다.

적은 상영관 확보와 이른바 '퐁당퐁당', 교차 상영이란 핸디캡에도 불구 피에타는 지난 15일 하루 관객수 3만8000명을 확보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본 레거시'를 압도했다.

1억2500만달러, 우리 돈 1400억원의 천문학적 제작비가 투입된 본 레거시는 3만명을 넘지 못했다.

반가운 건 10여일전 개봉 초기, 지방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 영화를 지방에서도 볼 수있게 됐다는 점이다.

3개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있는 충남 천안에서는 지난주 초만 하더라도 이 영화를 만나기 힘들었다. 극장들이 관객몰이가 되지 않을 것을 우려한 비상업적 영화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단의 칭찬과 '웰메이드' 작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주말에 갑자기 모든 극장들이 이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3개관 중 2개관은 주말 저녁 시간에도 상영을 허락()했을 정도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금요일 오후 8시에 들어간 영화관은 놀랍게도 관객들이 거지반 차있었다. 젊은 관객층이 많았다는 점도 무척 고무적이었다.

영화는 감독 스스로 얘기했듯 극단적인 현대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돈 때문에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게 하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담았다. 얼마 전 사채 때문에 룸살롱에 팔려나갔던 딸을 목 졸라 숨지게 하고 자살을 택했던 한 50대 가장의 비극이 생각나듯 돈에 얽힌 우리 사회의 모순점을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영화를 만든 김기덕 감독은 우리 영화예술계의 이단아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정통 코스를 밟지 않고 영화감독이 됐다.

이번 피에타까지 열여덟번이나 영화를 만들면서 그는 국내 영화감독들이 부대끼는 충무로를 철저히 외면해 왔다. 이른바 상업주의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아니 못 만들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다.

철저하게 자신만의 세계, 가치관을 담은 그의 작품은 늘 영리만을 추구해온 대기업 투자사들의 외면을 받았다. CJ, 롯데 등 대기업 계열 영화사들이 투자에서 배급까지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니 작품성보다는 늘 흥행성이 우선시 돼왔던 우리 영화계다.

그럼에도 영화는 뒤늦게 관객들의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되면서 서서히 스크린 수를 확장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이단아 김기덕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70만명대 관객을 모은 '나쁜 남자' 기록을 넘을 기세다.

씁쓸한 건 피에타가 외상으로 제작됐다는 점이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조민수, 이정진 등 배우들의 개런티를 한푼도 주지못했다. 필수 제작비를 빼고는 스태프 인건비도 외상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특히 영화진흥위원회의 역할이 궁금하다. 진흥위는 홈페이지에 2012년 한 해 사업으로 다양성 영화 지원, 영화 스태프 인건비 지원 등 26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 제작지원 예산만 50억원, 스태프 인건비 지원 10억원 등 1년간 500여억원을 쓰겠다고 했다. 제대로 쓰여지고 있을까. 불과 2~3억원짜리 영화가 외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알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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