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정치를 일러 사람들은 ‘생물’이라고 한다.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 전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합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끝장 토론까지 했지만, 팽팽한 시각차로 인해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던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한나라당에 의해 기습처리됐다. 단식농성까지 하며 협상을 통한 비준을 주장하던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었고, 최루탄이 터지고 고함과 몸싸움으로 얼룩진 국회의 모습을 국민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했고, 민주당 내의 협상파의 의견도 간간이 나오는 상황이라 24일 본회의에서 상정할 것으로 알고 안이한 대처를 한 민주당과 야권은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의회의 절차상 민주주의는 늘 다수라는 힘의 논리에 그 기능을 잃고 만다. 4년 4개월 동안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가 첨예한 대립을 보여 왔지만, 기습처리로 또 한 번 의회 민주주의는 오욕의 장이 되었다.다수 이익과 국가 미래에 대한 결단이라고 주장하지만, FTA 체결을 통해 피해를 입는 쪽이 있다면 시간을 두고 논의해도 늦지 않는다. 미국에서 비준안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우리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물리적 힘을 동원해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며 폭거라고 할 수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한 다수당의 횡포보다는 최루탄을 던지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전파를 타고 언론은 그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본질은 국민적 저항이 아직도 있고 협상을 통한 독소조항 제거라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함에도 힘으로 통과시킨 여당의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국회 몸싸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양비론을 통해 정치 혐오증만 가중시키고 있다.
내년 1월부터 효력이 발생하면 현재 2.5%의 관세를 내고 있는 자동차 사업은 2015년부터 관세가 없어져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지만, 40% 가까이 싼 가격으로 들어오는 미국산 쇠고기를 비롯한 축산농가와 과수농가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 뻔하다. 특히 한미 FTA 체결로 미국 대형 제약사들의 특허권이 강화되면, 국내 제약사들이 값싼 복제약을 만들기 어려워져 국내 소비자들은 높은 약값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과 FTA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시장 확대, 교역 확대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물론 이것마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후진국이 100% 손해다. 한국과 같은 뒤떨어진 나라가 차세대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FTA를 하면 이미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만 혜택을 보지 미국, EU,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제약 산업, 첨단 기계, 정밀 부품 등과 같은 산업에서 여전히 경쟁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과 FTA를 하면 이렇게 차세대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산업은 아예 나오지를 못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의 물타기식 언행은 FTA 비준동의안을 저지하는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앞으로 정국은 급속도로 냉각될 것이고 많은 민생 현안 법안들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여당은 날치기 처리라는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고, 야당은 강행처리를 막지 못한 집행부에 대한 책임논란이 대두될 것이다.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주고, 민의를 받든다는 정치인의 립서비스가 현실이 될 수 없고 ‘그들만의 리그’로 보는 냉소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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