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법
윤리와 법
  • 김태종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1.09.2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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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내가 지나온 윤리라는 통로는 참으로 혼란스러운 곳이었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이건 나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닌 모든 사람들의 일이기도 할 것이고 말입니다. 사람이 지녀야 할 맘꼴과 그 바탕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자리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것을 동시에 다루던 시절, 그 윤리적 가치관이 자리잡을 때 겪어야 했던 혼란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교과과정의 흐름에서 천대받고 있는 윤리과목, 교육에 있어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과목이 아예 변두리로 밀려나버린 현실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법질서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사건 사고로 드러나고 있음은 누구나 보고 듣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결국 시대의 정신이라는 것이 자리잡을 겨를이 없음을 말하는데, 결국 교육에서 윤리의 혼란이 우리 사는 마당의 모든 혼란에 골고루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다는 것, 그러니 여기서 다시 사람을 묻는 진지한 성찰의 계기를 찾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윤리와 법은 다같이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윤리는 비교적 자연발생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고, 법은 윤리보다는 구속력이 강한 것으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윤리나 법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건강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사회의 불안정은 윤리나 법의 구속력이 흐트러진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윤리나 법의 운영계층이 겉으로는 윤리적이거나 법 준수의 형식을 취하지만 내용상으로는 극도로 비윤리적이거나 탈법적인 경우 사회는 안으로 곪고 썩어들어가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정신적 좌표를 잃게 됩니다.

이런 시대는 약자가 살기에는 몹시 힘이 듭니다. 얼핏 보기에는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삶을 보장해 줄 장치가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와 정반대이니 말입니다. 이런 불안정은 필연적으로 큰 소용돌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변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때 희망을 말하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으로서의 법이나 윤리의 활용이 나타나지만 그것은 단기적, 또는 부분적 효과밖에는 거둘 수 없고, 오히려 소용돌이를 더욱 크게 하는 뜻밖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역사의 곳곳에서 보게 됩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계층이 생기는데, 소용돌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들이 겪는 공포의 정도도 그만큼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윤리나 법, 제도나 규범에 대해서 새로운 논의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리고 변화를 절실하게 바랄 수밖에 없는 이들까지도 기득권층의 논리에 편승해서 제 살을 발리우고 뼈를 깎이는 자리에서도 갈팡질팡하는 이들의 눈을 열어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상황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가장 쉬워야 할 윤리나 법, 제도나 규범이 이리도 복잡하게 얽혀서 사람을 뒤숭�!構� 하는 시대에 새로운 시대를 위한 태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는 각자의 것이지만, 그 각자의 맘꼴이 이어지면서 나타나게 될 윤리, 그리고 그 시대를 담아낼 수 있는 법과 법질서를 꿈꾸며 이 이야기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게 되는 것, 그러나 희망이 바로 코앞에 있음을 놓치지 않을 때 새로운 시대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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