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의 목소리
정효준 <광혜원성당 주임신부>환절기가 늦어져서인지 오뉴월에 걸리기 힘들다는 감기에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 일주일 잠긴 목소리로 지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 걱정들이 싫지 않았습니다. 생각들이 모여 관심이 되고, 걱정이 되고, 사랑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본당 신자들을 한없이 생각하고, 무엇이 필요한가 관심있게 지켜보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느끼는 고통에 함께하고, 사랑합니다.
올해 계획 속에 무엇을 해 줄까 고민하다가 결혼 기념일을 챙겨주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매달 첫 주 주일에 그달에 결혼 기념일을 맞은 부부들을 축복 해 주고, 선물도 주기로 했습니다. 선물을 고민하던 중 제 학생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저희 집은 부모님 생신보다도 결혼 기념일을 챙겨 드렸습니다. 선물을 해 드리기도 하고, 집안일을 도와드리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편지가 가장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신자 한 분과 함께 시를 썼습니다.
축복 받은 그날.
당신의 양손에
우리 두 사람의 손을 잡아 포개어 주신 그날,
당신 사랑으로의 초대에 기쁨으로 응답한
그날을 기억하며 당신 앞에 앉습니다.
돌아보니,
한 몸 이루라신
소중한 짝을 날카로운 가시로 아프게 찔러대어
굳은 상처 남겼습니다.
이제는 그 상처 애처로이 여겨
서로를 보듬을 줄 아는 성숙함을 주시고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비바람 휘몰아치던 그 밤.
암흑에 싸여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그 속에서
당신께서 잡으라 하신 내 반쪽의 손을 잡고
서로를 위로하고 연민하며 도닥이던 그날도
잊지 않게 하소서.
하여
당신이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우리도 닮게 하소서.
한결같은 인내로 받아 안아
끝까지 견디는 믿음을
서로에게 고백하게 하시고,
서로를 향한 거룩한 희생으로
소박한 보금자리 이루어 감을 감사하게 하소서. (2011년 결혼 기념일에)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이름뿐인 기념이 아닌 소중한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 주고 받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론 비싼 선물보다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이 가정의 화목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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