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이분
그분과 이분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8.1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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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강대헌 <충북인터넷고 교사>

그분이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이 제 눈에 꽉 찬 이유는 그분의 걸음걸이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오른발을 들어 30cm가량 앞으로 옮겨 지면을 밟고서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를 오른발 앞쪽으로 쿡 찍습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왼발을 끌어서 조금 앞쪽으로 옮겨 놓습니다. 이게 그분의 걸음걸이였습니다.

몸의 왼쪽이 마비되어 있는 그분의 행보(行步)는 마치 오체투지의 기도처럼 경건해 보였습니다. 쉬는 날도 거의 없는 듯했습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코스의 가장 중요한 일상인 듯했습니다.

한 번은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휴일에 그분을 목격했는데, 꼼짝없이 비를 맞고 있는 그분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습니다.

우산을 씌어 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분의 걸음을 끝까지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 했다간 약속 시간에 엄청 늦고 말 것이란 합리적인 변명도 슬쩍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다음 생각은 아예 우산을 드리면 좋겠다는 것이었지만, 왼팔을 쓸 수 없는 그분이 우산을 쓰려면 오른손에 익은 지팡이를 버려야 될 뿐만 아니라 걸음 템포(tempo)가 바뀌어야만 하는 뜻밖의 진통을 감수해야 하므로 이 또한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정말 그분께는 죄송했지만, 비가 빨리 그치기만을 바라면서 그분을 슬그머니 외면했습니다. 조금씩 멀어지는 그분을 뒤로 한 채 우산을 쓰고 걷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쟁그랑쟁그랑 소리를 내었습니다.

이분이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분이 제 눈에 꽉 찬 이유는 이분의 발뒤꿈치 때문이었습니다. 이분이 신고 있던 슬리퍼는 학생용 스타일로 사이즈가 맞지 않는 제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분은 양말을 신고 있지 않아서, 슬리퍼 바깥쪽으로 튀어나온 이분의 발뒤꿈치를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분의 발뒤꿈치는 숯처럼 까맣고, 단단하게 옹이가 지어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맨발로 세상에 맞서다 보니 그런 모습이 되고 만 것 같았습니다.

이분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조금 뒤따라가 보았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들어가는 어스름 저녁에 별로 바쁠 것도 없다는 식의 걸음을 옮기면서, 거리의 쓰레기봉투까지 힐끔거리는 이분이 어쩌면 홈리스(homeless)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이 앞섰습니다. 이분을 뒤따라가면서 바람에 실려 오는 이분의 체취까지 맡게 되었는데, 땀에 전 냄새가 하루 이틀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도 정처 없이 어딘가를 떠돌다가 간신히 잠을 청할지도 모를 이분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말을 건넸습니다. "아저씨, 아직 저녁 안 드셨죠" 말없이 고개를 수그리는 이분의 손에 약간의 식사비를 쥐어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번 일이 이분의 마음에 짐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이분의 자존감이 어서 회복되어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그분과 이분에 대한 제 생각과 행동의 모자람에 대해 당신은 하실 말씀이 많을 겁니다. 저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The Good Samaritan)'이 되진 못했으니까요. 그분과 이분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헤아려 보지도 않고, 그저 제 마음의 부담감만을 떨쳐내려고 잠깐 머뭇거렸을 뿐이니까요. 이웃에 대해 지속적인 결단과 헌신이 부족한 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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