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의 목소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영장이란 모든 만물 중에 영혼을 갖고 있고 그 영혼을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영혼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것이 마음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뿐이다. 사람도 동식물처럼 순응하며 살면 수명이 180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토인 자신을 스틱으로 만들고 있다. 원인은 바로 마음이다. 옛날 어느 동리에 짚신장사 하는 큰아들과 우산 장사 하는 작은아들을 둔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이 어머니는 날이 좋으면 우산이 팔리지 않는다고 둘째 아들을 걱정하고, 비가 내리면 큰아들을 걱정하다 보니 걱정이 없는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지나던 노승 한 분이 노모의 걱정을 듣고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즐거운 일만 계속될 것입니다. 비가 오면 작은아들 우산 잘 팔린다고 즐거워하시고, 날이 좋으면 큰아들 짚신장사 잘 된다고 기뻐하시면 즐거운 날만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노모는 그 후로 즐거운 날을 보내게 되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신라시대 고승인 원효대사와 의상 대사는 당나라로 진리를 깨치기 위해 유학을 가던 길에 소나기가 쏟아져 두 스님은 산속 동굴입구에서 비를 피해 있었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자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잠 자던 원효대사가 목이 말라 잠결에 머리맡에 있는 흰 그릇의 물을 먹었다. 아침이 되자 의상대사가 원효대사를 흔들어 깨웠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비를 피해 들어간 동굴은 시신을 버리는 무덤 동굴이고, 마신 물은 해골에 고여 있던 물이었다. 그 순간 원효대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으니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 마음가짐 하나에 달려 있다. 이 마음 외에 또 무슨 진리가 있겠는가"라고 깨닫고 유학을 포기하고 서라벌로 돌아왔다.
불가에서는 '멱심료불가득(覓心了不可得)'이라는 말이 있다. 달마스님의 제자인 혜가스님이 찾아와서 "스님 마음이 괴롭고 편하지 않으니 저의 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하니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줄 테니 네 마음을 이리 가져와 봐라", "스님 어찌 마음을 내어놓을 수가 있습니까?", "마음을 내어놓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달라는 것이냐. 내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케 했으니 네 마음을 네 마음자리에 두어라"하니 제자 혜가는 이 말씀에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의 육체는 마음에 좌우되고 있다. 마음은 보고, 듣고, 서고, 걷고, 기뻐하고, 굳어지고, 부드러워지고, 슬퍼하고, 무서워하고, 오만해지고, 남에게 설득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찾고, 반성한다. 가장 강한 사람은 그 마음을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밭이 있으면 밭을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을 걱정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내 마음이 어디에 있으며 그 마음자리가 과연 어디인가를 잘 가늠하기 힘들다. 불교에서는 그 마음을 다스리고 그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즉 수행이며 그 수행 중 마음을 찾아내기 위해 피나는 각고를 치르는 것이 참선수행이다. 그래서 화두(의문)를 앉고 참구한다.
마음은 항상 그 마음의 주인에 따라 기쁨이 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 마음을 어느 자리에 두느냐에 따라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 사람은 땅위에 집 지어 살고, 새는 숲 속 둥지에 살고, 물고기는 물에 살며, 짐승은 산과 들에 살고 있는데, "마음아! 너는 어디 살기에 보이지 않느냐"고 외쳐 불러 보자.
법구경에 이르길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이 근본이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속에 악한 일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도 또한 그러하리라. 그 때문에 괴로움은 그를 따르리. 마치 수레를 따르는 수레바퀴 자취처럼. 마음속에 착한 일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 또한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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