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기 전에
겨울이 오기 전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1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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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김 영 미 <수필가>

어느새 빛 고운 낙엽이 지고 있다. 여름내 뜨거운 햇빛을 묵묵히 받아들이던 나뭇잎들이 하나씩 자신들을 그렇게 덜어내고 있는 중이다.

청주 육거리시장은 아침 출근시간이면 노인들로 북적인다. 이른 새벽 손수 농사지은 곡식과 채소를 내다 팔고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시내버스 정류장은 항상 빼곡하다. 출근길에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할머니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다.

떠날 때는 그저 자식들 신세지지 않고 자는 듯 가야 한다는 화제로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자식들 고생하지 않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 얌전히 가야한다며 내뱉는 긴 한숨이 깊게 패인 주름위로 고인다.

영감하고 한날 죽으면 제사 하나 덜어 줄 수 있을 텐데, 하면서 끝까지 자식 걱정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할머니. 그 할머니의 소망은 함께 사는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란다. 그래야 자신이 뒤처리 다하고 마음 편히 갈 수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60도쯤 굽은 허리를 곧추 세운다. 홀시아버지 모시고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살아오신 과정이 얼마나 힘겨웠던지 소매 깃으로 눈물샘을 비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가까운 죽음을 접한 것은 친정 할머니다. 노환으로 돌아가실 때쯤엔 정신이 흐려져 알아듣지도 못하는 딴소리를 많이 하셨다. 이따금 정신이 맑아질 때는 피붙이들의 손도 잡아보고 이것저것 물어보다가도 돌아서면 이방인처럼 다른 세계를 헤매셨다.

가까운 시댁의 고종사촌 형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지만 가족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그대로 세상을 뜨셨다. 준비되지 않은 떠남으로 가족들은 큰 슬픔에 빠지고 주변사람들까지 아직도 당혹해 하고 있다.

살다보면 준비된 죽음을 보기도 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국민배우 최진실의 예측 불허한 죽음은 그를 사랑한 온 국민을 공황상태에 빠뜨렸다. 이러한 주변의 주검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기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에 관한 일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죽음에 다다랐을 무렵 그는 침상을 바라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죽어서 내 육신이 누울 공간은 한 평인 것을, 이 한 평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며 수만 리 길을 달려왔단 말인가. 내가 죽거든 나의 두 손을 관 밖으로 나오게 하라'

영생불멸의 삶을 살 것 같았던 알렉산더 대왕도 빈손으로 떠났고 언젠가는 우리도 모두 떠날 것이다.

두런두런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세상의 짐을 내려놓을 날이 나는 과연 언제쯤일는지. 날마다 시간은 내게서 조금씩 멀어져가고 어느새 겨울이 더 가깝다. 겨울이 오기 전에 세상 욕심 버리고 몸을 말리는, 삶을 단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리라. 버스에서 내려 직장으로 향하는데 물기 잃은 나뭇잎들이 바람에 난분분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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