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0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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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문학 칼럼
박 홍 규 <교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 조지 레이코프의 말이다. 아예 책 제목으로 이 말을 붙여놓고 있다.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의 관심사는 많은 미국인들이 왜 자신에게 손해를 가져다 줄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자에게 투표를 하는가이다. 합리적이고도 상식적인 생각으로 자기가 속한 계층에 불리한 공약을 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행위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민감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프레임'이라는 용어를 동원한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도덕적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투표를 비롯한 일상적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는 틀(프레임)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책의 유불리 여부가 투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는 사실이나 진실이 프레임과 충돌할 경우, 사실은 사라지고 프레임만 남는다고까지 주장한다. 공약이 아니라 후보자가 내세우는 정체성이 자신의 프레임과 부합하는지 여부가 선택의 관건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프레임은 언어로 구체화되는데 예를 들어 소수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크게 돌아갈 뿐인 감세정책을 부시가 '세금 구제'라고 선전할 때, 이 말 속에는 세금은 부정해야 할 고통이며 부시는 그 고통에서 사람들을 구제해주는 영웅이라는 은유가 생겨난다. 물론 이 은유는 미국 유권자들의 프레임에 강한 호소력을 행사한다. 이면의 진실 즉 세금이 줄어드는 만큼 사회복지라든가 교육 의료 시스템이 부실해지는 현실은 교묘히 은폐되어 버린다. 맞는 말이다. 이에 대해 레이코프는 공화당의 주요 정책을 홍보하는 어휘와 표현을 아예 무시하도록 민주당에 권고하면서 그 구호로 '코끼리(미 공화당 상징)는 생각하지 마'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랬다. 5년 주기로 우리도 무엇인가 기대를 하고, 희망을 제법 걸어왔다. 그러나 매번 그 기대와 희망은 실망으로 때로는 환멸로 바뀐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왜 그러고 있었을까. 특별히 올해 벌어진 일은 레이코프가 고민한 상황과 너무 흡사하기까지 하다. 불리한 공약은 의미 있는 판단 잣대가 아니었던 셈이다. 왜 그럴까.

레이코프의 개념을 동원하여 답을 찾아보건대, 우리의 '프레임'이라거나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언어라는 것은 말하자면 '경제'이고 또 하나는 '성장'이 아닐까. 경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로지 경제만 중시되는 현실은 유쾌하지 않다. '경제와 성장'만 횡행하는 삶의 거리는 을씨년스럽다. 여섯쯤 되는 형제 중 오직 장남만 배부르게 먹고 명품으로 도배하여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는 반면 나머지 다섯은 피골이 상접한 채 누더기를 걸치고 장남의 눈치를 살피며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 말하자면 예술이라든가 철학, 윤리 등은 가장자리로 밀려난 채 옹송거리고 있는 소외당한 형제들이다.

'성장'도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마술 같은 말이지만, 잠깐이라도 생각을 해 본다면, '무한한 성장'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고 언어도단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하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선, 성장을 뒷받침해 줄 자원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진실은 에너지와 식량이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쪽에 가깝다. 또한 끝없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장하는 만큼 골격이 강건해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와 삶의 구조는 오직 먹어치우는 입과 위장만 강해지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부조화다.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 두 개의 언어로 프레임을 채워온 결과와, 공약의 위험성을 흘려버린 채 표를 던진 결과는 결국 지금 환멸이 되어 우리를 풍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질문, 장차 우리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아니 새롭게 생각해야 할 언어와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프레임은 무엇인가. 난처하게도 우리는 이미 답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읽은 책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삼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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