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희생된 철학자와 불안으로 유명해진 영화인
불안에 희생된 철학자와 불안으로 유명해진 영화인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1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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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의 안심세상 웰빙치안
김 중 겸 <건양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

악처(惡妻)를 논할 때의 단골이 크산티페다. 성격은 불 같았다. 하지만 바가지를 긁었다는 증거는 없다. 개숫물을 남편 머리에 뒤집어 씌었다는 얘기는 나돈다. 서구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쌓은 소크라테스의 부인이다.

덕분에 그는 위대한 철학자가 됐다. 얄궂게도 나이 칠십에 기소됐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게 그 하나 이유다. 또 하나는 도시가 숭배하는 신 대신에 새 종교를 끌어들였다는 죄였다. 500명의 배심원중 280명이 사형을 요구했다. 2심에서는 항소했다는 괘씸죄로 360명이 원심을 지지했다. 친구들이 탈옥을 종용했으나 거절했다.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셨다.

죄 자체는 사형감이 아니었다. 사회가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전했다. 전염병이 2차례나 내습해서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게다가 폭정에 시달렸다. 자연히 분위기는 침울했다. 민심이 흉흉했다. 사회불안은 희생자가 필요했다. 너 자신을 알라며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철학자가 희생양이 됐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불안을 상품화해서 유명해진 영화감독이다. 52년 동안 53편의 장편을 쏟아냈다. 무성영화에서 출발해서 유성영화까지 만들었다. 흑백에서 컬러까지 섭렵한 당대 거장이다.

영국에서는 소수파인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야채가게를 하던 아버지는 엄했다. 범죄행위는 절대 불가가 가훈이었다. 종교계통의 기숙학교 생활은 지켜야 할 수칙을 가중시켰다. 이는 강박관념을 낳았다. 나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성장했다. 열다섯 살 때 부친이 죽자 경악했다. 자신이 아버지의 조속한 죽음을 기대했었다는 내심을 자각해서다.

죄악감과 불안감은 내면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대로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에 투영됐다. 줄거리를 좇다가 그만 헛물켜게 만드는 맥거핀 기법도 이상성격의 연장선상에서 개발됐다. 배우는 가축이라면서도 미남과 금발 미녀만 기용했고 같은 장면을 수없이 다시 찍는 학대도 자행했다. 본인은 불안감을 없애려고 폭음과 폭식을 하고 이내 토해냈다. 비만에 허덕였다.

둘 다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하나는 사람들의 불안이 죽였다. 하나는 불안으로 입신했다. 공교롭게도 이 좋은 봄에 모두 죽었다. 안심이란 보통사람이 보통으로 살 때 이루어지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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