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64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변덕쟁이 할아버지의 소망 변덕쟁이 할아버지의 소망 이규정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보내면서 한 해를 보낸다. 올해도 어느 사이에 3월에 들어서는 제법이나 따뜻한 햇살이 쏟아진다. 아직도 동장군이 적잖은 미련이 남았는지 꽃샘추위를 하겠다는 심술을 부리지만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을 어떻게 견디겠는가.어김없이 다가서는 봄에게 슬그머니 밀려나는 꽃샘추위는 동장군의 하찮은 미련에 불과한 심술에 지나지 않는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거스르지 못하는 세월에 나이를 먹기 마련이다. 어려서는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에 강물처럼 흘러가는 세월이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사춘기를 넘기면서부터 나이가 더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중년을 넘어서면서 나이를 먹는 것이 야속하고 지천명의 나이에 괜스레 더해지는 나이가 원망스럽기도 生의 한가운데 | 충청타임즈 | 2011-03-08 21:33 춘설에 마음 싣고 춘설에 마음 싣고 정상옥 멀리 보이는 앞산 봉우리가 온통 새하얗다.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났건만 무슨 미련인지 겨울의 잔재는 아직도 떠나질 못하고 머물고 있다. 엊그제 내린 함박눈을 간절기의 짓궂은 장난으로만 이해하기엔 체온으로 느껴지는 추위가 매섭기만 하다. 봄의 초입에서 불어오는 샛바람이 한겨울 찬바람보다도 더 스산하게 느껴진다.겨우내 여미고 있던 몸과 마음이 답답하던 차 혼자서 나선 산책길에 문득 외로움이 엄습하는 건 어인 일인지. 아무도 없는 시간의 조용함을 참 많이도 즐기며 살아온 나였는데 그 순간 혼자 나온 것이 못내 후회되는 것은 어느덧 나이가 들었단 말인가. 시끌벅적대는 산만함에는 진즉 적응치 못하는 천성이며 적막함에 오히려 더 마음을 주고 즐기는 심성이라 생각했던 건 나 자신조차도 나를 잘 알지 못 生의 한가운데 | 정상옥 <수필가> | 2011-03-07 23:31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강대헌 "나 얼마만큼 사랑해? " "그야, 하늘만큼 땅만큼이지.""정말""그럼!"이런 사랑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두 명의 남자(만석과 군봉)와 두 명의 여자(송씨와 순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생의 황혼기를 맞고 있었습니다.우유를 배달하는 만석의 오토바이 불빛이 부르릉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눈 내리는 새벽의 어둠을 조금씩 물리칩니다. 그의 오토바이 바퀴에 작은 돌멩이 한 개가 삐딱하게 밟혀 튕겨져 날아가더니, 리어카를 끌고 지나쳐 내려가던 송씨의 머리를 때립니다. 송씨는 비명을 지르며 길바닥에 주저앉고 맙니다. 그렇게 그들의 만남은 시작됩니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한 개가 때론 사람의 운명을 바꿔 놓기도 하는군요. 돌멩이 한 개라도 하찮게 볼 일이 아니라고 지금부터라도 마음 生의 한가운데 | 강대헌 <충주공고 교사> | 2011-03-06 21:11 쉼박물관 쉼박물관 윤병화 짐승은 어미와 애비를 알지만 조상은 모른다. 사람은 어미와 애비뿐 아니라 조상을 알고 보답하려 애쓴다.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를 봉양하고 마지막 가는 길에 예를 다하여 섬기는 것은 효의 근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례는 부모를 위한 효이기도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이 될 수 있다.상례문화는 단순히 의식과 절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족의 관계이며 나아가 사회 질서의 근간이 된다. 상례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소생하기 시작했으며 유교, 불교, 도교, 민간신앙 등이 서로 혼합된 형태에서 발전되었고 조선시대 더욱 형식화되었으며 체계적인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이러한 상례문화를 소개하는 전문박물관으로 서울시 종로구 홍지동에 쉼박물관이 2007년 10월 개관하였다. 조선시대 상례문 生의 한가운데 | 윤병화 <세경대학 박물관큐레이터과 교수> | 2011-03-03 21:27 홀로 가는 길 홀로 가는 길 이영창 내가 어려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왜 그렇게도 학교란 데를 가기 싫어했었던 것인지 이제 와 알 것도 같다. 유독 내겐 그런 때가 많았었다. 아예 공부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 시절 사친회비라는 것이 있었다. 월사금이라고도 하였다. 그것을 한 달에 한 번씩 내야 하는 것인데도, 한 번도 제때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생님께 언제나 눈총을 받아 왔다. 그 돈은 학교를 운영하는 데도 쓰이지만 선생님 봉급을 주어야 하는 돈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나 기가 죽어지내야 했다. 그러나 우리 동내가 꽤 큰 마을로 50여 호 되는 마을이었다. 그래선지 마을에는 나와 같은 학년의 아이들도 6명이나 되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성적이 좋았던지, 꽤 공부를 잘하는 아이, 머리가 좋은 아이라 生의 한가운데 | 이영창 <수필가> | 2011-03-01 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