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년전 '미완의 혁명'농민군 숨결 다시 찾는다
113년전 '미완의 혁명'농민군 숨결 다시 찾는다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7.12.20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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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동학혁명 재조명 학술회의 개최

육거리서 기념제·농민군 진혼 헌다래

1894년 12월 22일, 청주 육거리 남석교 근처는 청주성 탈환에 나선 동학농민군들의 선혈로 물든다.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 공격으로 읍성에서 시작된 전투는 동학농민군이 육거리로, 무심천으로 밀려나며 혈전을 치른다.

밤새 벌어진 전투에서 열세를 면치 못한 동학농민군은 피의 폭풍이 몰아친 거리에 시체로 쌓이고, 승기를 잡은 일본군과 관군은 시체를 불태우며 동학농민군의 전투는 사실상 막을 내린다.

그리고 113년째를 맞는 22일, 그동안 사람들의 기억속에 '미완의 혁명'으로 남아있는 동학은 새롭게 부활의 불씨로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청주에선 처음으로 충북의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해 당시 동학농민군이 싸우다 전사한 육거리에서 기념제를 지내고 동학의 역사적 위상을 정립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22일 행사는 오후 3시 청주 석교동 육거리에서 풍물패의 길놀이와 당시 전투에서 작렬히 피 흘린 동학농민군을 기리는 노제를 지낸다.

이어 서원대 미래창조관 세미나실에서 청수봉정을 시작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는 학술회의를 연다. 신영우 충북대 교수는 '동학농민의 청주성 전투와 역사적 의의'란 주제로 발표하고, 신안준 충청대교수가 '충북동학혁명기념사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은경 충북대 강사가 '충북동학 스토리텔링-파랑새'를 발표한다. 그리고 문화행사로 동학농민군 진혼 헌다례와 동학농민혁명을 노래하는 시를 낭송한다.

◇ 충북의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은봉건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외세를 물리쳐 자주적 근대사회를 이룩하자는 백성들의 의지를 보여준 사회변혁 운동으로 그 중 충북의 동학은 혁명이 시작이자 끝이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특히 1870년대부터 충북지역은 꺼져가던 동학을 재점화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중심 역할을 했다. 1893년 보은집회는 실질적인 동학농민혁명으로 기록될 만큼 사회변혁 운동으로 노선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이듬해 1894년에는 충주와 청풍, 옥천, 영동 등지로 동학농민들의 봉기가 번져나며 충북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데, 9월 이후에는 일본군을 상대로 항일의병운동이 전개될 때 보은의 북실전투는 마지막 큰 규모의 전투를 기록한다. 이 혁명을 이끈 지도자의 면면을 보면 전봉준에 버금가는 서장옥과 최제우, 손병희, 박장준 등 충북 출신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충북은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로 "동학농민혁명은 충북에서 시작해 충북에서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 "현실 변혁해 미래 열 동학정신 계승"

<인터뷰> 김 태 종 <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공동대표>

-전주를 비롯해 보은 등지에선 동학운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되었지만, 청주에서는 처음으로 동학운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청주와 동학은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요.

△ 동학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과거를 정리하여 현재의 변혁을 통해 미래의 새 지평을 열었던 훌륭한 운동이며 소중한 민족자산입니다.

아쉬운 것은 이 혁명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이지만, 잘 보면 그래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미완의 과거 역사가 오늘에 다시 피어날 수 있고, 그 정신은 그대로 살아있으니 이제 겨레 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동학은 우리나라라면 굳이 어느 한 지역의 소유라 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곳곳마다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지역마다 지닌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피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굳이 충북 동학의 의미를 꼽으라고 한다면, 우리 지역의 선조들이 보여준 훌륭한 기개가 오늘을 사는 이들의 생명 안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데 이 정신사의 한 흐름 안에 동학의 정신을 접목시킬 때 예측되는 기대효과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닙니다.

현재적 의미로는 우리 지역의 역량입니다. 원흥이 운동으로 대표되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이미 동학의 발현이었다고 읽을 수 있는데, 다양한 운동을 동학 안에서 재정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와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하나 더 꼽는다면 전국에서 도 단위로는 처음으로 충북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꾸렸다는 점인데, 이밖에도 각론적으로 들어간다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다양한 동기들을 들 수 있겠으나, 이 정도로 해 두도록 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 동학운동은 안으로는 봉건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밖으로는 침략 외세를 물리쳐 자주적인 근대사회를 이룩하자는 민중운동이었습니다. 이후 100년의 시간이 지났고, 동학사상을 현대사회에 맞게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동학의 사상을 꽃피울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먼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현재라는 자리에서 과거를 읽어내는 일이 의미있는 작업일 터인데,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나 답습이 아니라 현재라는 틀 안에서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수정할 것은 수정하면서 현실을 변혁하여 미래를 열고자 했던 동학정신을 계승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통전적인 인식이 필요한데, 시대적으로는 현대,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우리 지역인 청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 전체가 포함될 것이며, 또한 대중운동인 동시에 각 개인의 내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운동까지 포함되는 것이 동학의 정신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고, 표면과 내면을 포함하는 운동으로 풀어내게 될 때, 우리는 한 차원 성숙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다른 분야의 선진성보다 먼저 정신적 선진화를 이룰 수 있고, 그 때에 비로소 외형상의 선진화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이 확립되었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학술적인 접근,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교육, 현재의 다양한 운동들을 동학의 차원에서 정리하면서 미래를 전망하는 일들이 동학운동의 현재와 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통전적 차원이라는 말로 간략하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충북의 동학운동을 조명하기 위해 첫 발자국을 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동학운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인지요.

△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앞에 한 말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충북동학농민기념사업회는 별 힘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단체가 아니냐고 걱정 담긴 목소리로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막 첫울음을 터뜨린 신생아가 충북동학농민기념사업회의 실체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며 자신의 역량이 되는 대로 동참하고, 잘하는 것이 있으면 손뼉 쳐주시고, 잘못하는 것이 보일 때에는 호된 꾸지람도 주신다면 충분히 크게 성장하여 한 몫을 단단히 할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또한 좋은 활동가가 참여하여 활발하게 일을 풀어내게 될 일도 기대해 봅니다. 그러면 오늘의 자리에서 겨레의 얼이며 소중한 민족자산인 동학정신을 그에 걸맞게 가꾸고 피워낼 수 있을 터이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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