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 일 듯한 두려움과 믿음
친구 사이 일 듯한 두려움과 믿음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3.05.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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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어릴적 경험은 참으로 중요하다. 얼마 전 동네 산책 중 횡단보도 앞에서 무심히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지나가던 작은 개가 나를 향해 다가오며 `왈왈' 짖는다. 목줄도 했고 동반인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안전 요건에는 맞지 않았다. 나에게 다가오고 갑작스레 짖는다는 것이 위협이고 위험이다.

그 순간 내 안에 있던 두려움이 증폭되어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감정이 고조돼 울음으로 폭발했다. 단지 이번 한 번의 일로 그리되진 않았다. 반려견이 많아지는 것이 요즘 시류다. 당연히 산책 나오는 개도 많아졌다. 나처럼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겐 위험 노출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반복된 경험으로 쌓이고 쌓였던 두려움이 폭발한 것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줌마가 길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엉엉 소리 내며 울다니…. 참으로 민망한 일이었다. 어찌하랴! 그쳐지지 않는 것을. 개는 단지 사람이 있으니 다가와 짖었을 뿐이고 주인은 견주로서 의무를 다하느라 산책을 나왔을 뿐인데…. 난 집에 들어와서도 엉엉 울었다. 한참을 그랬다.

병원도 가보고 명상 선생님에게도 갔다. 명상 코치님과의 대화 중 깨달았다. 두려움은 나에 대한 믿음의 부족에서 왔다는 걸. 수탉에게 공격당한 힘 없던 여섯 살 어린아이, 쥐약 먹고 힘들어 침 질질 흘리던 커다란 개와 마주한 열세 살 방어 능력 없던 어린아이가 가졌던, 자신에 대한 불신이 아직 남아 있어서란 걸 알았다. 난 불신을 계속 간직한 채 살아왔다. 겁이 많은 아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다. 개를 보면 돌아가고 피하며 되도록 두려운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했다.

`못된 개가 쫓아와요!'라는 그림책이 있다. 주인공 아이도 미친 듯이 짖어대며 쫓아오는 개 때문에 고심이 많다. 주인공은 컹컹이로 인한 공포를 피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치열하게 연구한다. 기다란 대나무 다리를 만들어 키다리가 되어보기도 하고, 바람 많은 날에 우산을 펼쳐 하늘을 나는 도구로 사용하며 꾀를 내며 회피해 본다. 그러나 못된 개 컹컹이는 포기하지 않고 집까지 따라온다.

공포는 동물계의 기본적인 감정의 하나로 신경계에 내재해 본능적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서적 갈등을 감지하거나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면 가장 먼저 적절한 반응 보이는 감정이란 것이다. 책 속 주인공과 나는 회피를 먼저 택했다. 그 이후 지점부터가 갈림길이다. 기특한 책 속 주인공은 고양이 `미끼'의 행동에서 회복 방법을 알아내고 행동으로 옮겨본다. 눈높이를 같게 하며 차분히 컹컹이가 다가오길 기다린다. 컹컹이도 다가와 냄새 맡고 간식도 받아먹으며 친밀감을 보인다. 못된 개에서 멋진 개로 바뀌는 시점이다.

유난히 개들은 나만 보면 짖거나 달려든다. 그렇다고 나를 해하거나 위협한 적도 없다. 가족들은 겁이 많은 나를 개들도 알아보고 까니 보는 거라며 놀린다. 명상 코치님의 관점을 달리하란 이야기가 힘이 됐다. 쥐약 먹은 개는 도와달라는 신호였을 거란다. 지나가던 개가 짖는 것은 친구 하자며 말을 건 것일 거란다. 경계는 해야 하지만 두려움의 상대는 아니란 얘기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단시간에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해보려 한다. 나에게 다가오는 강아지가 있으면 `응, 너 왔구나!' 눈도 마주 봐 보고, `왈왈' 짖으면 `안녕!'하며 말을 건네보려 한다. 나도 강아지 정도는 제압하거나 빠르게 도망칠 체력이 있다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조금씩 눌러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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