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여론의 본질 곱씹길
반대 여론의 본질 곱씹길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3.2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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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실없는 사람이라는 핀잔을 듣고싶다면 여럿 모인 자리에 가서 “국회의원 늘릴 필요가 있다”고 떠들면 된다.

최근 한국갤럽이 국회의원 증원과 관련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늘려도 된다'고 한 응답자는 9%에 불과했다. 57%는 `현재도 많으니 오히려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 국회의 현주소다.

발의되고도 국회 17개 상임위에서 먼지만 쌓인채 계류된 법안이 지난해말 현재 총 1만3198건에 달했다. 한시가 급한 민생법안이 수두룩하다.

국회는 지난 2021년 스스로 `일하는 국회법'을 만들고 상임위별로 법안을 심의하는 소위원회를 매월 3회 이상 열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1년만인 지난해 이 규정을 지킨 상임위는 한곳도 없었다. 17개 상임위의 월 평균 법안소위 개회 건수는 0.6회, 한달에 한번도 열지 않았다. 우리 국회의 보수(세비) 대비 효율성이 OECD 27개 회원국 중 26위라는 평가결과가 나왔는데, 꼴찌를 면한 게 신기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압도적 여론의 본질은 인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밥값을 못하는 무능에 있다는 얘기다.

국민 10명 중 9명이 반대하는 국회의원 정수 늘리기가 정치권에서 시도되며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해온 국회 정개특위의 정치관계법개선소위가 그제 3개 안을 마련해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할 안건으로 의결했다. 이 가운데 2건이 의원 정수를 300명에서 350명으로 확대하고 비례대표를 50명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세가지 안 모두 내용은 복잡하지만 입후보자가 아닌 정당 투표로 뽑는 비례의석을 늘리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두 당이 의석을 독식하는 굳건한 양당제에 1등만 당선되는 소선구제가 겹치면서 유권자 10명 가운데 4명은 자신의 정치 대리인 확보에 실패하고 있다. 이같은 사표를 줄여 양당의 대립을 완충할 제3의 정파를 키우고,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가 의정에 반영되도록 하자는 게 의원정수 확대·비례대표 증원의 취지로 보인다. 비례 의원은 지역구 관리에 시간을 쏟고 당 공천권자에게 휘둘려야 하는 지역구 의원에 비해 의정활동에 소신을 발휘할 수있다. 이들의 수가 늘어나 세를 형성하면 정치 개혁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국회 정수 확대에 대한 반대 여론이 최대 걸림돌이다. 당장 국민의힘이 이 여론에 올라타 의원 늘리기에 결사 반대하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자당 의원이 위원장인 정치관계법개선소위에 참여해 3개 논의안을 의결해 놓고 돌연 350명 증원을 전제로 한 2개 안은 상정조차 할 수 없다며 빗장을 채웠다. 3개 안을 중심으로 토론하기 위해 27일 열기로 한 전원위원회도 보이콧할 태세다. 여론을 받들겠다는 태도는 참으로 가상하지만, 그 여론의 속뜻까지 헤아려 줬으면 좋겠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론의 본질은 소모적 정쟁으로 날을 새우며 세금만 축내는 정치인들을 더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지방에서는 4~ 5개 지자체에서 1명을 뽑아 국회의원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지역구가 흔하다. 국회의원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수치스러운 여론을 방패로 삼아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로 뻔뻔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의 주장은 경청할 만 하다. 그는 “먼저 국회의원 세비 절반을 깎고 국회의원 정수를 놓고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연 1억5500만원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회의원 세비를 가구당 평균소득인 6414만원으로 낮출 것을 국민에게 약속해야 국민의 마음을 열고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9명씩 배정되는 보좌관 수도 줄여 국회 운영비용을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고 의원 증원을 추진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 이상의 혈세가 들어가지 않는 조건이라면 유권자들도 고민할 만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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