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때문에
편견 때문에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3.03.2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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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6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소위 일류학교라고 하는 곳에 합격해서 다니는 내내 나는 특별하다는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는 시골 출신인 내가 도시의 소위 일류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주변의 부러워하는 소리도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왠지 발걸음엔 힘이 실렸다.

그땐 아무나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아니긴 했다. 그래선지 그 시절의 교육은 어쩌면 특권의식을 심어주는 데 충분했던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적어도 내가 이래서 되는가?>라는 물음을 참 많이도 했었다. 성찰일 수도 있겠으나 배울 만큼 배운 나는 무언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 같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란 말을 많이 생각했다. 내 경우를 봐도 친구 하나 사귀는 일마저 서툴기 마련인 사회 열등생, 세상 살기가 솔직히 수학 문제보다 더 어려우니 어쩌겠는가?

솜에 물 스며들 듯 가장 예민하게 배우고 익히던 때, 일류학교 출신이라는 카테고리에 갇힌 생각들 대부분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편견들임을, 어리석게도 나이 먹을 만큼 먹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잘난체하는, 소위 밥맛 없는, 알량하게 타협도 모르는 옹졸한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나는 동생들하고만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 믿을 수 있는 건 동생들뿐, 남들은 친구끼리 즐기는 일들을 우리는 자매끼리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둘째가 번개를 쳐서 부랴부랴 구미의 금오산 호텔로 달려간 적이 있다. 물론 밤을 새워도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낮에는 이곳저곳 구경하러 몰려다녔다.

“언니, 이 모자 써 봐, 잘 어울리는데?”호텔을 나와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중이었다. 가까스로 미장원에 다녀온 머리가 망가질까 봐 머플러만 두른 내게 동생은 바람끝이 차다면서 모자를 씌워준 것이다. 군데군데 흰 꽃무늬가 박힌 회색의 챙 없는 털모자였다.

“고맙다, 비쌀 텐데!”“아니야, 싼 거야”

동생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는데 넘겨짚은 나는 막무가내로 값비싼 모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더욱이 거울도 보지 않고도 동생의 말만 믿고 잘 어울린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자매 셋 중 제일 젊고 세련되고 멋지다고 믿는 터, 셋째가 서울 하고도 잠실 백화점 부근에 살고 있어 보는 것 듣는 것 모두 시골뜨기인 데다 열한 살이나 차이가 나는 나이 때문에라도 미적 감각은 월등하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가 주는 옷이나 모자를 한 번도 거절해본 적이 없다. 덥석덥석 받고 무조건 그냥 다 좋아하는 나였으니까.

누구도 끼워주지 않는 볼 장 다 본 늙은이 아닌가?

놀아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지 설레발을 치면서 찻값도 식사비도 다 내가 낼 것이라고 큰소리치면서 보란 듯이 모자를 눌러 쓰고 앞장서 다녔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저녁거리를 사러 동네 슈퍼에 갔다. 우선 물건부터 고른 후, 계산할 때 슈퍼 아줌마에게 동생이 준 모자가 잘 어울리는지 자랑삼아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아뿔싸, 물건을 고르려다 말고 밀차를 끌고 옆에 다가온 한 노인을 보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쩌면! 동생이 준 모자와 똑같은 것을 쓰고 있다.

나는 생각할 짬도 없이 재빨리 모자를 벗어 호주머니에 구겨 넣고 있었다.

“모자가 멋있으세요.”“요 장터 옆 목욕탕에서 샀는디, 좋은 겨?”

간장을 콜라인 줄 알고 마신 듯 오만상이 구겨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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