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스물한 살, 다시 봄
세 번째 스물한 살, 다시 봄
  •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충청대 실용음악과 23학번)
  • 승인 2023.03.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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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충청대 실용음악과 23학번)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충청대 실용음악과 23학번)

 

봄기운이 가득하다. 책을 가슴에 안고 밝은 얼굴로 강의실을 찾아 삼삼오오 이동하는 스물한 살 청춘들의 모습이 참으로 싱그럽고 아름답기만 하다. 풋풋한 새봄처럼. 그 스물한 살 청춘들 속에서 나도 23학번 새내기로 나의 스물한 살, 정확히는 세 번째 스물한 살의 봄을 즐기고 있다. 이 얼마나 설레고 경이로운 일인가?

스물한 살 때 공주에서 나도 저 청춘들처럼 책을 들고 강의실을 찾아 대학 캠퍼스를 누볐었다. 그리고 그 해 벚꽃이 흐드러지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눈에 잡힐 듯 선하다. 공산성 언저리에서 흐르는 금강물을 보면서 알퐁스 도데의 소설에 대해 학우들과 토론했던 일, 해 질 녘 돌아오던 길에 막걸리 몇 병을 사들고 금강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떠오르는 달을 보며 다시 밤늦도록 토론을 이어갔던 일….

작곡가로서의 꿈을 접고, 사범대학으로 진학해서 불어선생님으로 살기로 하면서 쌩떽쥐뻬리와 알퐁스 도데에 빠져 지냈던 그 봄날은 돌이켜보면 참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는 퍽이나 허전하기도 했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思春) 혼자라는 사실에 꽃은 흐드러지게 피었어도 꽃향기가 외려 울렁거렸고 마음은 그저 시리기만 했었다.

그리고 그 봄의 끝자락에서 나는 5·18을 만났다. 간간이 남풍에 실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탱크와 군화의 이야기들은 스물한 살 내 청춘을 긴 침묵으로 몰아넣었다.

내 두 번째 스물한 살의 봄은 교원대에서 만났다. 일본어와 중국어의 바람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존폐의 기로에 서면서 과목 변경을 위한 자격연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프랑스어 선생님으로 학생들과 샹송이며 어린 왕자, 프랑스 영화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부터 시작해야 했던 그 봄날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한 여인의 남편, 세 아이의 아빠라는 무게감은 어떤 것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선한 눈망울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사명감으로 나는 책상 앞에서 살았으며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스물한 살의 봄을 교원대 연수원에서 무거운 짐을 진 채 꾸역꾸역 견뎠다.

그리고 다시 맞는 나의 세 번째 스물한 살의 봄!

33년 선생님으로 살았던 무게감을 내려놓고 그동안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작곡에 대한 꿈을 키워보려고 충청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이제는 스물한 살 때의 아픔도, 두 번째 스물한 살 때의 무거움도 없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서늘하더니 그새 가벼운 외투마저 투박하게 느껴진다.

세 번째 스물한 살 내 청춘은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그 꽃길에서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첫 번째 스물한 살의 청춘이 묻어야 했고 두 번째 스물한 살 청춘이 여전히 꺼내지 못했던 작곡의 꿈을, 이제는 조심스럽게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키워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더 이상 무겁지 않기를 기도한다. 세 번째 내 스물한 살 청춘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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