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호랑이가 필요하다
큰 호랑이가 필요하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3.03.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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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밭을 사려면 변두리를 보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반드시 그 주변 환경도 잘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간마저도 재산 가치로 환산되는 시대에 시간을 허투루 쓰는 일이 없게 하려는 나름 지름길 공식이다.

얼마 전 모 기관에서 교육 관련 제의를 받고 사전 미팅을 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비전이지만, 내용보다는 형식에 중점을 둔 기관업적주의라는 회의감에 정중히 사양했다. 의아한 듯 바라보는 눈빛에서 오랜 관행이라는 비애를 느낀다.

“감히 어떻게 이런 자리를 사양할 수가 있지?”

물론 그런 조건과 자리면 대개는 두 손 조아리고 넙죽 엎드려 최선을 다하겠다며 충성을 맹세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도 삶의 원칙과 나름의 철학이 있다. 일명 공동체 속 개인으로 사는 `나답게 행복 또는 용기 공식'이다.

내게도 타자에게도 행복한 일이면 주저 없이 용기 내야 해 YOU.

송나라 장자의 개인주의는 중국 철학사에서 가장 대표적이다. 진정으로 타자와 세계를 사랑하려면 자신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칫 이기적으로 볼 수 있지만 건강한 자타 사랑법의 출발점이다.

앎의 출발은 먼저 자기 탐구로 시작하여 타자, 세계로 향한다. 자신도 객관적으로 볼 줄 모르는 터에 타자와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호랑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영양고기를 염소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틀렸다고 말할 것도 아니고 염소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풀을 호랑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해 안 간다고 비판할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호랑이가 염소를 호랑이로 키우려고 해서도 안 되고 염소 또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호랑이를 꿈꾸는 우매함도 없어야 한다.

“호랑이는 호랑이고, 염소는 염소다.”

자신은 염소이면서 호랑이를 수하로 두고 자신의 명함에 얹어 레버리지(leverage)효과를 내려는 위전들이 지천이다. 호랑이를 맞으려면 자신 먼저 큰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야생의 새끼 호랑이가 무지한 위전을 만나 우리에 갇혀 풀만 먹는다면 큰 호랑이의 그 잠재적 기능은 도태될 것이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포기하는 젊은이들 중 대부분은 일은 힘들지 않은데 능력도 없이 자리만 지키고 앉아 후배들의 업적을 가로채는 상사들 때문에 충성하고 싶지 않다는 항변이다. 의롭고 존경할 만한 큰 호랑이 같은 상사가 있는 곳이라면 대기업이 아니어도 열심히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니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가끔 자칭 상전 노릇을 하는 사람을 대할 때면 이따금 정치 우화 `동물농장'과 `마우스 콘신'이 스친다. 군중을 힘으로 통제하며 최소한의 인격조차 갖추지 못한 빅브라더들이다.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스탈린)에 대적한 의로운 스노볼(트로츠키)은 나폴레옹의 비겁한 농간에 밀려나지만, 후방에서 모든 동물이 제 권리를 찾도록 길잡이가 된 큰 호랑이였다. 음험한 고양이들의 정책에 대항하여 외롭게 분투해온 시궁쥐의 절규 또한 쥐 마을을 개선시킨 큰 호랑이였다.

모든 것이 자본과 영합하여 그 본질을 잃어버린 시대, 어디에서 큰 사람을 만나 맘껏 으르렁거리며 포효할 수 있으려나. 애먼 하늘에 눈을 걸고 전설 속 인물들을 떠올린다. “태양과 대지가 나의 관이다.” 세상 물욕과 담쌓고 산 장차(莊子) 역시 큰 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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