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취하다 - 월영매
나누고 취하다 - 월영매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공예진흥팀장
  • 승인 2023.03.14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공예진흥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공예진흥팀장

 

매년 반복되는 계절은 어김없이 존재를 드러낸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쉽사리 내어주질 않을 건만 같은데 봄의 전령은 시간을 두고 조심스레 필 것들을 소환 중이다. 가끔 해묵은 미련을 털어버리지 못하는 칼바람은 봄의 햇살에 섞여 얄궂다.

그도 한때, 고대 그리스 보병 전술의 `팔랑크스'의 창을 연상시키듯 날카롭게 곧추세우던 서릿발은 아침 햇살이 닿는 순간 서로를 부둥켜안고 캔버스의 물방울이 된다.

이 정도의 날씨면 벌써 피었을 복수초가 아직 손깍지 상태다. 잔뜩 멋을 부린 녹색의 팔소매를 펼치고도 악수 청하기를 망설인다.

무언가 못마땅한 것일까?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설마 다시 피울 수는 있는 것일까 하는 곳에서, 가뿐하게 순을 올리고도 망설이는 것은. 꽃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고 겨우내 존재를 잊었다고 내심 서운한 것인가?

아직 영춘화도 피우지 않았는데, 좀 더 기다려야겠다 싶다.

여차하면 복수초보다 영춘화보다도 먼저 꽃을 피울 것 같은 녀석이 한껏 물을 올렸다.

작년에 하늘에 닿아 보겠다고 한껏 자신만만하던 가지가 꽃망울을 사방으로 달았다. 해묵은 가지에도 다 꽃눈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망울을 달았다.

하긴 겨울부터 꽃눈을 달고 키워 왔으니 가장 먼저 피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해를 거듭하며 자란 줄기는 거칠다 못해 굳은 나무껍질이 터졌다. 언제 생동감 넘치는 초록의 기운을 가졌던가 싶다.

검갈색에 한파를 이겨내며 얻은 연륜의 상처뿐인 줄기다. 스스로 한계를 이겨내려 진화한 것인지, 그대로 받아들이며 난 생채기의 흔적일지는 모르겠다. 꺾이고 패인 굴곡진 마디마디는 상처를 치유하면서 더 거칠어지고 굵어졌다.

숱한 세월, 끝도 없는 시련 속에 움직임이 멈춘 듯하다. 그러면서 뿌리는 더욱 깊숙한 곳을 찾았다. 모질다 싶을 정도의 상황에서 고요함을 찾고 조용히 잦아들었다. 거목의 회화나무를 응축해 놓은 듯하다. 신운이 감돈다.

손톱보다도 작은 옥구슬을 달았다. 유백색의 춘천옥을 살포시 감싼 비취다. 여리고 여린 연옥의 꽃을 단 가지는 겨우내 시도 때도 없이 부는 칼바람을 버텼다. 눈물겨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눈도 뒤집어썼다.

버티기 힘든 고난이었지만, 털어버리고 햇살을 맞았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부터 꽃망울을 달았으니 언젠가 피우겠다는 의지로 버텼다. 잠시 피워 포말이 될지언정, 한겨울의 한파를 꽃망울을 살찌우는 단련의 에너지로 여겼다.

머지않아 꽃을 틔울 것이다. 꽃은 잠시 세상의 색을 달리하고 바닥에 이르겠지만, 겨우내 축적해온 에너지를 집약해서 양질의 씨앗을 품을 열매를 만들 것이다.

이리저리 굴릴 머리가 없다. 지극히 단순하다. 색도 단순하다. 그래서 감동을 주고 여운을 남긴다. 매년 피는 꽃인데, 색은 발하는데, 고아한 운치가 있다. 향은 깊숙이 자세를 낮춰 아늑하고 고요하다. 집 앞 문지기 `월영매'다.

홑겹의 꽃잎, 단출한 숫자의 꽃잎은 결함도 많았다. 일찍 꽃눈을 달았으니 시련의 기간과 과정은 길고도 험했다. 어디 한 곳 숨을 만한 잠복소도 없었다. 그저 언젠간 피운다는 희망만 있었다. 늘 그러했으니 그려 하려니, 그저 부푼 망울을 하나라도 더 달고자,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메마르고 거칠고 냉담하지만, 정령이 깃든 꽃망울을 달았다.

감나무 밑에서 상사화의 알뿌리가 숫자로 늘어나는 위세를 부리는데, 매화는 30여년의 세월에도 쉬 존재를 내세우지 않는다.

매화가 피면, 꽃을 하나 청해 따스한 물에 띄우고, 마음 나눌 귀한 사람과 술자리를 만들어, 매화향에 취하고, 술에 한 번 취해 보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