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이 무상하다
이기심이 무상하다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03.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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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아내와 무주구천동 어사길을 다녀왔다. 어사길은 덕유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에서 백련사까지 4.9km 조금 넘는 코스다. 주차장에서 월하탄, 인월담, 사자담, 청류동, 비파담, 다연대, 구월담, 신대휴게소, 금포단, 호탄암, 청류계, 안심대, 신양담, 명경담, 구천폭포, 백련담, 연화폭포, 이속대, 백련사로 이어져 있다. 왕복 4시간 이상 소요된다.

어사길은 박문수 어사가 무주구천동에서 지역민들을 못살게 굴었던 탐관오리를 벌하고 사람의 도리를 바로 세웠다 하여 붙여진 길로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는 덕유산 자락 계곡 길이다.

주차장에서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백련사 방면으로 오백여 미터가량 계곡을 따라 오르자 월하탄의 비경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월하탄 안내문을 살펴보니 월하탄 계곡은 무주구천동이 품은 33경 중 15경이다. 선녀들이 달빛 아래 춤을 추며 내려오듯 폭포수가 쏟아져 푸른 담소(潭沼)를 이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하탄 계곡은 낮과 밤의 분위기가 다르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폭포수가 달빛에 비치는 밤이면 그 은빛 찬란한 그윽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적혀있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아내와 함께 월하탄의 매력에 한참을 서성였다. 옴폭 파인 커다란 기암을 타고 여덟 줄기로 쏟아져 내리는 낙수가 상큼한 소리를 낸다. 월하탄이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코로나로 답답했던 마음이 평온해지고 기분이 상쾌하다. 그동안 싸였던 마음의 때를 씻어낸다. 계곡 반석 위로 흐르는 물줄기에 욕심 한 줌 흘려보냈다.

무주구천동의 바람에 훈기가 실려 있다. 구천동 계곡을 둘러싼 산등성 나무들이 봄을 안아 촉촉하다. 내가 느끼기에는 시간이 정지된 듯 그날이 그날인 것 같았는데 세월은 오차 없이 계절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무주구천동 계곡의 물소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봄의 왈츠로 춤춘다. 구천동 계곡이 들려주는 봄노래가 경쾌하다. 아내와 발맞추며 걷는다. 아내의 발길을 따라가는 내 눈길이 계곡의 절경에 사로잡혀 내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느릿느릿 30여 분 걸으니 널찍한 바위를 타고 맑은 물이 소리 내며 떨어진다. 인월담이다.

인월담은 신라시대 인월화상이 인월보사를 창건하고 수도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물 위에 달이 도장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비춘다 하여 인월이란다. 탁 트인 하늘과 우둑한 덕유산 봉우리가 인월담에 어우러져 있다.

아내는 무릎이 아파 인월담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백련사까지 혼자 다녀오란다. 인월담에서 백련사까지 가는 동안 지혜의 문과 소원성취의 문을 지나고 소원성취의 탑도 만난단다. 길 따라 곳곳에 다양한 의미와 사연이 담겨 있단다. 잠시 정상을 향해 한달음에 오르던 젊은 날의 객기와 욕심이 꿈틀한다.

인월담으로 떨어지는 청아한 봄 햇살에 40여 년 아내와 함께 다독이며 지켜온 세월이 파노라마로 지나간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보낸 세월 이제는 아무런 욕심도 없다. 아들과 딸도 제각기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 더 무슨 소원이 있겠는가.

지금 아내와 함께 무주구천동 계곡을 바라보고 있으니 행복이다. 무리하게 정상을 찾는 욕심보다 걸어온 만큼 행복을 느끼고 싶다. 백련사까지 다녀오지 않으면 어떠하랴. 아내를 혼자 둘 수 없는 일이다. 아내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혼자 정상에 다녀와서 의기양양했던 지난날의 이기심이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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