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셨다
봄이 오셨다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3.03.0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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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봄은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이다. 봄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있다면 꽃가루에 취약하거나 황사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지 봄이 싫은 건 아니다.

사람들이 봄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모두가 좋아한다면 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 끝에 온 계절이기에 그 따듯함이 더없이 반가운 이유도 있을 것이고, 곧 다가올 끈적하고 따가운 더위가 아니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쁘고 다양한 색깔들의 꽃이 피니 눈이 즐거워서 좋은 이유도 한몫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를 포함하면서도 모든 이유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유가 있다. 봄이 아니라면 그 많은 생명들이 태어나는 계절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봄은 그 많은 생명들이 태어나는 모습을 확연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록(新綠)이라 불리는 새순의 녹색은, 결코 겨울엔 없던 것이 봄이 되면 호리도 틀림없이 분명히 있다는 듯 연초록 색깔을 자랑하며 온 산을 물들인다. 생명이 태어난다는 말은 꼭 새 생명을 말하는 건 아니다. 연초록 새순도 그렇지만 꽃을 봐도 그렇다. 분명히 작년에 있던 나무와 식물들이다. 그런데 겨울에 죽은 듯 보였던 그 몸에서 생명이 움트는 것이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채들의 향연은 생명의 생동성을 더없이 잘 대변해준다. 꽃과 나무들뿐이랴. 꿈틀거리는 지렁이부터 다 함께 모여 합창을 할 날만 기다리는 개구리 몇 마리도 봄의 생명이다. 그렇다. 봄에는 흙도 다시 태어난 땅처럼 보인다.

봄에는 아무 곳을 보아도 거기 생명이 태어나 있다. 새 생명이어도 좋고 죽은 생명의 부활이어도 좋다. 봄은 생명의 잔치판인 것이다.

인간이 새 생명에서 보는 것은 희망이다. 이제 막 태어난 생명의 미래는 언제나 열려 있다. 아무도 쉽게 불안과 우울을 예견하지 않는다. 태어난 생명의 미래는 오직 축복과 간절한 염원이 있을 뿐이다. 죽은 것에는 희망이 없다. 죽은 것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은 없다. 오직 살아있는 생명에서만 희망을 본다. 희망이 있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죽은 것이다.

봄이 오셨다. 생명의 잔치판에서 주인공이 되어보자. 부러운 듯 쳐다보며 늘 잔칫상을 서성이던 객이 되지 말고 새 생명의 주인공이 되자. 죽어 있는 희망을 다시 한 번 살려보자.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육신은 살아 있으나 마음은 죽은 사람이니, 살·도·음(殺盜淫)을 행한 악인이라도 마음만 한 번 돌리면 불보살이 될 수도 있지마는, 희망이 끊어진 사람은 그 마음이 살아나기 전에는 어찌할 능력이 없나니라. 그러므로, 불보살들은 모든 중생에게 큰 희망을 열어 주실 원력(願力)을 세우시고, 세세생생 끊임없이 노력하시나니라.'(대종경 요훈품 12장)

나는 반성한다. 정치와 사회 뉴스에 마음이 죽어 있었다. 봄이 오셨으니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 마음 한 번 돌려 희망 꽃을 피워내려 한다. 꺾어지고 시들지라도 그때마다 다시 피워내면 그만이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그 믿음이 내겐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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