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내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한내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3.0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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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시나브로 봄이 흐른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동안 벼르던 일을 실행하려고 나섰다. 음성 소이면 한내에서 진행되는 3·1 만세 운동 재현 행사는 매년 있어왔다. 한번은 가봐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서야 작정하고 나선 길이다. 행사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왔는데도 벌써 차들이 좁은 읍내의 길 양쪽으로 즐비하다. 할 수 없이 차를 멀찌감치 세우고 행사장까지 걷기로 했다.

한내는 1960년대만 해도 그래도 꽤 큰 장터였다는데 지금은 장도 열리지 않고 그저 소이를 지나다니는 차로의 역할만 하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현대식 건물도 그리 많지 않고 집들도 오래되고 낡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허름한 집들을 보니 초등학생이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한내에서 멀지 않은 중동 2리에는 이모님 댁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 바로 아래 동생이었던 이모님은 부치는 땅이 수월찮이 있어 살림이 애옥한 우리 집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넉넉했다. 그래서인지 방학 때면 이모님 댁에서 한참을 지내다 오곤 했다.

지금이야 동네마다 시내버스가 다니지만, 그때만 해도 한내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만 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길도 넓지도 않고 울퉁불퉁한 좁은 비포장 길이었다. 이모님 댁을 가다 보면 중간쯤 방앗간이 있었다. 언제나 아낙들로 북적이곤 했다. 워낙에 자주 가다 보니 동네 사람들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 반겨주곤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한내는 나를 설레게 했던 곳이었다. 천천히 걷다 보니 예전의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가슴이 따뜻해졌다. 오래된 벽에는 흰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은 소녀와 흰 두루마기를 입은 남정네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벽화도 있고, 태극기와 무궁화도 곳곳에 그려져 있어 이곳이 만세 운동이 있었던 역사의 장소라는 것을 알려 주는 듯했다. 또 `한내다방' 간판이 있는 낡은 건물 벽에는 조선시대의 풍속화도 있어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 착각도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능 놀며 걷다 보니 어느새 행사장이다. 만세 기념 공원에서 진행된 기념식이 끝났는지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이 큰길로 내려서고 있었다. 뒤이어 확성기가 달린 트럭 뒤로 군수님, 의원들, 그 외에 지역 유지들과 함께 많은 사람이 만세 운동 재현을 위해 열을 맞춰 섰다. 나도 작은 태극기를 얻어 사람들 뒤에 섰다. 확성기에서는 1919년 3·1운동의 그날의 일들을 들려주고 있었는데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울먹이는 목소리처럼 들렸다.

한내 장터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한 달 후인 4월 1일에 있었다. 마침 그날은 한내 장날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내는 충주와 괴산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로 많은 사람이 이용했던 곳이었기에 수백 명의 사람이 만세 운동에 함께했다. 그날 한내장터에서는 김을경, 이중곤, 권재학, 추성열, 이교필, 이용호 등의 열사가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날 한내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확성기에서는 그날의 일들을 들려주는 중간 중간 “대한 독립 만세!”라는 외침이 들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대한 독립 만세! 만세!! 만세!”를 외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함께 외치며 긴 행렬을 따라다녔다.

그날 행렬을 뒤따르며 만세를 외쳤던 그 가슴 벅찬 순간을 나는 아마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듯싶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피를 흘리며 지킨 선열들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결코 미래는 없다'라고 말씀하신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다시금 가슴속 깊이 새긴다.

역사를 바로잡는 일보다 더 중차대한 일은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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