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마사지
손 마사지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3.0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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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난생처음 손 마사지를 받으러 왔다. 차례가 되어 들어서니 상냥한 얼굴로 “어서 오세요” 인사와 동시에 눈으로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으란다.

늙어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투박한 손을 남에게 맡기는 게 처음이라 부끄러워 망설여진다.

수줍어 섰는데 마주한 아가씨는 고운 손을 내밀어 내 손을 덥석 잡아 수건 위에 올려놓고는 크림을 바른다. 여리고 앳된 보드라운 손이 군살 박힌 투박한 손을 양손으로 포근히 감싸 안고 손등과 손바닥을 엄지손가락으로 자근자근 누른다.

다섯 손가락 모두를 아래위로 주무르다 당긴다.

양손에 안긴 내 손은 처음 만날 때의 수줍음을 잊고 어느새 안식을 누리고 있다. 보듬어 피로를 풀어주는 동안 후각,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이 살아난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다.

지금껏 일감으로 고생만 시켰지, 이런 호사를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 자리를 나서면 또 이런저런 이유로 일감을 안겨줄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내 손도 한때는 마사지 선생의 손처럼 고운 적이 있었지. 심한 노동으로 손가락 마디도 굵어졌고 뜨거운 공간과 찬 곳을 오가게 해 피부색도 변했다.

손바닥은 수분이 없어 보드라운 천을 만지면 마찰이 일어난다. 주름진 손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깊고 낮은 삶의 굴곡이 보인다.

마디와 군살이 형성될 때 마음에도 박혔는지 세월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는데 아픔이 떠올라 가슴이 시리다.

이 약하고 작은 손은 마음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며 희로애락을 같이했다.

가정을 꾸미니 많은 일감이 내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편마비로 자리를 보전한 아버지, 초등학교 1~2학년 조카 남매, 연년생 아들 둘 기저귀, 비닐장갑도 없을 때다.

몇 년 동안은 손빨래의 양이 많아 아침에 수돗가에 앉아 시작하면 정오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 겨울이면 손등이 갈라져 피가 난 적도 한두 번이 아녔다. 이토록 혹사했으니 어찌 늙지 않았겠나.

그 당시는 밤이면 손가락 마디와 손목이 아파 단잠을 이루지 못했고 수저질하다 놓치기도 몇 번.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손등의 주름이 말해준다. 가수 정동원 여백 노랫말에는 `내 손에 주름이 있는 건 길고 긴 내 인생에 훈장'이라 했고, 반 숙자 수필가는 늙은 얼굴의 자글자글한 주름을 꽃으로 표현했다. 나는 삶의 흔적이라 표현하련다. 손등의 주름 한올 한올이 크고 작은 속살이고 눈물이고 애처로움이고 그리움이고 다짐이라 어느 것 하나 내려놓을 수 없는 아주 뜨겁게 사랑한 흔적이어서다.

볼품없는 손을 사랑으로 보듬는 이 여리고 애틴 손도 내가 살아온 날 수를 사노라면 깊이와 너비는 다를 수 있지만, 날수의 주름은 쌓일 게 분명하다. 요즘은 생활 여건이 좋아져 일감에 맞는 장갑을 끼면 손이 덜 망가지겠지. 바라기는 내 나이 되도록 산다 해도 고운 주름이기를 기대해본다. 주름살과 얘기를 주고받는데 따뜻한 수건이 양손을 포근히 감싼다. 시원하시죠. 끝이 났습니다. 인사한다. 따뜻한 손길에 취해 더 머물고 싶은 바람마저 든다.

가방을 열어 초콜릿 몇 알을 쥐여주며 “손이 호사했다며 인사하고 싶다네요. 사랑을 선물하는 좋은 날 되세요”라고 나왔다.

2013년 문인들과 오송 화장품뷰티세계박람회장에서 실습 나온 충청전문대 미용과 학생에게 난생처음 손 마사지 받던 날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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