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지옥 악몽 한 번으론 부족한가
개미지옥 악몽 한 번으론 부족한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3.05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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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검찰이 진정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기를 고대했을까? 그래서 이 대표가 법원에 나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길 원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라는 데 한표를 던진다.

체포 동의안 가결은 민주당 뿐 아니라 검찰로서도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달갑잖은 경우에 해당된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고 이 대표 손을 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지않은 법조인들이 도주 우려가 없고 결정적 물증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들어 영장 발부가 쉽지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던 터였다.

이 대표에 대해 청구한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될 경우 검찰은 치명타를 맞을 수밖에 없다.

정적 제거를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민주당에 반격의 계기를 주며 열세로 몰릴 게 뻔하다.

이 대표 구속으로 기울었던 여론도 반전될 가능성이 높다. 대북 송금·백현동 개발 의혹 등 다른 사건으로 추후 청구하게 될 구속영장도 불신에 휘말릴 수 있다.

민주당은 체포 동의안 부결을 다시 당론으로 밀어붙일 구실을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자동으로 영장이 기각되기는 하지만 부결이 더 큰 실익을 가져올 것으로 판단했을 지 모른다.

법원 판결에 의한 영장 기각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면서 명분 싸움에서 확실하게 민주당의 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스스로 폐지를 약속한 특권에 숨어버렸다는 비판 여론이 더 고조될 터이니 향후 수사나 영장 청구도 거침없이 밀어붙일 수 있다.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과반 찬성이면 가결되는 체포 동의안 처리는 재적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래도 안심하지 못한 지도부와 이 대표가 당내 결속과 이탈표 단속에 사활을 걸면서 넉넉한 표차의 부결이 점쳐졌다.

하지만 검찰은 만에 하나 법원이라는 확신할 수 없는 허들을 넘어야 하는 가결로 결정나면 어쩌나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대표와 민주당에 심각한 내상까지 안기는 가외소득(?)까지 얻으며 부결을 얻어냈으니 내심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요컨대 민주당이 검찰에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선물을 헌납했다는 말이다.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이 소속 의원들의 대거 이탈로 `가결같은 부결'이 된 후 민주당은 친명과 비명 의원간 갈등에 휩싸였다.

`기획된 반란'이라며 배신자를 색출해 책임을 묻자는 강경론까지 제기되며 내분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분위기가 심상찮아지자 박홍근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끼리 책임을 추궁하며 분열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윤석열 정권이 노리는 함정”이라며 단합을 호소했다.

하지만 당은 이미 함정에 빠진 것 같다. 검찰이 놓은 함정이 아니라 스스로 판 함정, 그것도 가장 깊은 함정을 골라서 말이다.

함정에 빠졌으면 탈출이 급선무다. 하지만 “소통을 강화해 의원들의 마음을 더 크게 하나로 모으는 일에 주력하기로 했다”는 박 원내대표의 말에선 더욱 공고한 방탄 단일대오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만이 읽힌다.

민주당 조웅천 의원은 당의 처지를 `방탄 프레임에 갇혀 발버둥 칠수록 빨려들어가는 개미지옥' 같다고 했다.

민주당의 자멸적 행보를 답답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중도 유권자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개미지옥의 악몽을 이미 겪은 바 있다. 이번에 기권·무효표를 던진 의원 20명이 결정을 유보하는 대신 불출석을 선택했다면 이 대표는 법원에 나가 구속 여부를 판단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을 것이다.

다음 체포 동의안 표결 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겠나?

민주당이 지금 할 일은 이탈자 색출과 방탄 대오 재정비가 아니라 `문빠'에 휘둘리며 조국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몰락한 전 정권의 실패를 곱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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