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의 눈물
아프로디테의 눈물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3.03.0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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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2월, 귀한 꽃들이 연구실에 왔다. 언제 봐도 기분 좋은 프리지아가 송이가 제법 큰 안개꽃과 함께 오더니 튤립에 라넌큘러스, 리시안셔스가 분홍빛을 자랑하며 들어왔다. 행복에 겨운 와중에 어제는 카네이션과 묵직한 양감의 연보라 수국까지 만났다. 그야말로 꽃 잔치다. 다발로 묶인 꽃을 풀어 병에 꽂으려는데 꼿꼿한 꽃들 사이로 풀죽어 고개 숙인 꽃 한 송이가 눈에 든다. 아네모네! 아네모네야 말로 봄의 꽃으로 손색이 없다. 바람 많은 봄, 하늘하늘 여린 잎을 흔드는 어찌 보면 약하나 강한 꽃, 바로 아네모네다.

아네모네는 종류도 빛깔도 다양하다. 알뿌리도 있는가 하면 여러해살이 풀로 분류되는 것도 있다. 영국 큐(Kew) 왕립 식물원이 출간하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인 “플랜츠 오브 더 월드 온라인(Plants of the World Online)”에는 63개 종을 아네모네 속에 포함하고 있다. 또한 아네모네는 우리나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륙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빛깔과 종류만큼이나 아네모네에는 여러 이야기가 얽혀 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에 관한 이야기다. 몰약 나무로 변한 미르하의 아들로 태어난 아도니스는 잘생긴 청년으로 자라나 아프로디테와 페르세포네 두 여신을 모두 반하게 했다. 두 여신 사이에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제우스는 아도니스에게 페르세포네가 있는 지하세계에서 4개월, 아프로디테가 있는 지상에서 4개월, 나머지 4개월은 아도니스의 자유에 따라 머물도록 판결한다.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를 사랑했고, 지상의 4개월, 자유의 4개월 즉 1년의 2/3를 함께 보냈다. 두 연인이 함께 있는 동안 태양은 밝게 빛나고 땅은 사람들에게 친절했고 꽃은 피었고 열매는 무르익었다. 아도니스가 지하로 내려가 페르세포네의 품에서 잠을 자는 4개월 동안 겨울이 세상을 지배했고 모든 것이 죽고 조용해졌다.

다시 아도니스가 지상으로 오면 세상은 다시 빛났고,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는 산천을 누비며 사냥을 즐겼다. 특히 아도니스는 위험한 맹수 사냥을 즐겼는데, 노심초사한 아프로디테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멧돼지의 공격으로 그는 숨을 거두게 된다. 쓰러진 그에게 달려가는 아프로디테가 얼마나 급하게 달려갔는지 달리는 동안 그녀는 흰 장미에 발이 찔려 피로 꽃을 물들였다고 한다. 이것이 지구 상에 나타난 최초의 붉은 장미다. 아프로디테는 죽은 아도니스의 몸에 신들의 술을 부었고 한 시간도 안 되어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은 아도니스의 피와 같은 진한 빨간색이었다고 한다. 그 꽃이 바로 아네모네다. 지금은 개량이 되었지만, 아네모네는 꺾어두면 금방 시든다고 한다. 아마도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짧은 사랑처럼 속절없는 사랑, 허무한 사랑을 말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아프로디테의 눈물로 허무한 꽃만 피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세계 여성의 날 레베카 드바니(Rebecca Devaney)와 에밀리 고티에(Emilie Gautier)는 `아프로디테의 눈물(The Tears of Aphrodite)'이라는 설치예술 작품에 7만5천 송이 아네모네를 피워냈다. 여러 패널 위에 분홍색, 주홍색, 보라색, 빨간색 등 고운 빛깔의 직물 아네모네 꽃송이가 자수로 수놓아졌다. 하나의 패널은 하루를, 어여쁜 꽃송이는 폭력으로 희생된 여성들을 의미한다. 365개 패널 위의 7만5천 송이 아네모네, 아름다운 꽃송이마다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세계 여성의 날은 매년 3월 8일이다. 봄의 초반 아네모네를 기다리는 아프로디테의 마음으로 어떤 사람도 약하다는 이유로 억압받지 않기를 염원한 것일까? 아, 아네모네에게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거에요'라는 꽃말도 있고 흰색 아네모네는 기대와 희망을 의미한단다. 새 학기 시작 아네모네와 함께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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