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새긴 글씨들
바위에 새긴 글씨들
  • 김도연 충북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 승인 2023.02.26 1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김도연 충북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김도연 충북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여행을 다니다보면 고속도로 휴게소나 관광안내판에서 지역별로 ○○팔경(八景)이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팔경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지역에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덟 군데의 경치라는 뜻인데, 충청북도 단양군의 단양팔경이나 강원도의 관동팔경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팔경은 본래 중국의 샤오샹?팔경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조선시대에 정형화되고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를 팔경으로 정리하여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바로 팔경문화가 이어진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최근 만들어진 관광지를 포함하여 팔경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름 유서 깊은 단양팔경을 다녀보면 빼어난 경관과 함께 많은 역사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어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내고 있다.

그런데 단양팔경을 다녀보면 바위에 글씨를 새긴 암각자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을 따라 많은 글씨가 남아 있는데, 한자로 꽤나 정성스럽게 새긴 이 글씨들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암각자가 새겨진 연원을 찾아보면 조선시대 후기에 널리 유행한 유람문화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 교통이 편리하고 생활수준도 많이 향상되어 누구나 쉽게 여행할 수 있었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유람은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대부들만이 즐길 수 있는 문화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관광명소를 가보고 싶어 하듯이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명승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유람은 공자의 태산 등정과 주자의 남악 유람을 본받아 학문의 체험과 성취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문화행위로 인식하였다고 한다.

실제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역사현장을 답사하며 역사의식을 배양하기도 하고, 명현(名賢)의 자취를 따라 유람하기도 했다. 또한 통신수단이 부족하였던 시기에 유람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교우관계를 쌓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람이 끝나면 기록이나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금도 당시의 유람기록인 `산수유기(山水遊記)'가 다수 전해진다.

이밖에도 유람문화와 함께 바위 등에 글씨는 새기는 각자문화(刻字文化)도 성행하게 된다. 글씨를 돌에 새기는 작업은 주로 석공이 담당했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을 하나만 소개하자면 단양팔경의 하나인 중선암에 있는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三仙水石 : 사군 중 삼선계곡의 수석이 가장 뛰어나다)'암각자가 있다. 이 암각자는 1717년 충청도관찰사였던 윤헌주가 글씨를 써주고 석공에게 새기게 한 것인데, 커다란 바위에 새긴 글씨 아래로 새긴 날짜와 함께 `태삼(泰三)'이라는 석공 이름이 함께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 지역 곳곳에 남기진 많은 암각자는 이러한 조선시대 유람문화 및 각자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유람문화를 학문의 체험과 성취의 필수적인 문화요소로 설명하긴 하였지만 남아있는 자료들을 보면 여행의 가기 전 설렘, 여행지에 느끼는 감동, 돌아와서의 여운 등이 오늘날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흡사 오늘날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방명록이나 쪽지에 글을 남기거나 사진 찍어 SNS에 인증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올해 1월부터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다. 이제는 점차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인데, 아마도 봄이 찾아오면 각지의 관광명소마다 사람들이 북적일 것 같다. 혹시라도 유서 깊은 명승지를 방문한다면 이러한 암각자를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아닐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