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실리도 없는 불체포 특권
명분도 실리도 없는 불체포 특권
  • 권혁두 국장
  • 승인 2023.02.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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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담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그제 한 지인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 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바로 검찰에 체포되는 거냐고 물었다.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문구 그대로 받아들이면 체포에 동의한다는 의미이므로 이런 해석이 나올 법도 하다. 이 대표 경우에는 영장심사 동의안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헌법은 국회 동의 없이는 회기 중에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범법을 저지른 국회의원이 구속수사를 회피하고자 악용하는 폐단으로 지목되는 불체포 특권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검찰이 했지만 구속 여부를 결정할 심리는 법원이 한다.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이 국회서 가결되면 그는 영장 실질심사장에 나가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한다. 체포(구속)는 그 결과에 따른 후속 절차이다. 그의 구속 여부는 검찰이 이니라 법원 판단에 달렸다는 얘기다. 그가 행사할 불체포 특권은 검찰이 아니라 법원의 절차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검찰의 영장청구가 부당하기 짝이없는 야당 탄압이라며 영장심사에 응할 수 없다는 야당의 주장이 다소 옹색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주장에선 법원이 `증거도 없이 억측과 소설로 짜맞춘 검찰 수사'에 휘둘릴 수도 있다는 예단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단을 빌어 검찰의 부당한 수사에 일격을 날리며 단숨에 판세를 뒤집을 호기가 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덕분에 주목받는 이가 있다. 입을 열 때마다 논란을 빚는 `삑사리'의 대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모처럼 뜨고있다. 검찰은 지난 2018년 5월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한 부정청탁 혐의 등으로 권 의원에 대한 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국회에 체포 동의안이 상정된 후 `방탄국회' 논란이 일자 불체포 특권을 거부하고 법원의 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했다. 그에 대한 영장은 기각됐고 재판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민주당이 체포 동의안 부결에 올인하며 내부단속에 나서자 “권 의원을 본보기로 삼으라”는 쓴소리가 당안팎에서 터지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권 의원을 띄우며 “이 대표도 불체포 특권에 숨을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법원의 영장심사에 나가 무고를 밝히라”고 압박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도 “권 의원 처럼 직접 나가 영장 실질심사를 받는 것이 일관성있고 깔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 체포 동의안은 오는 27일 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재적의원 과반이 참석해 과반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민주당 의석이 과반을 훌쩍 넘는 만큼 부결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대표와 민주당이 검찰의 영장 공세에 불체포 특권으로 맞서는 것이 최선이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민주당에는 득이 될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당의 희망대로 부결된다 해도 이 대표 스스로 폐지를 약속했던 특권에 안주했다는 당밖의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 대표에 대한 여당과 검찰의 방탄 공세는 더욱 힘을 받을 것이다. 이번 한번에 그칠 일도 아니다. 변호사비 대납, 대북 송금, 선거법 위반 등 영장 청구로 이어질 의혹 수사가 한두건이 아니다. 그때마다 불체포 특권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만에 하나 가결될 경우 반란표를 놓고 엄청난 내분과 갈등이 초래될 것이다. 이 대표는 사력을 다하고도 당의 결속에 실패했다는 회복 불능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 대표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국민에게 약조한대로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고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정면돌파가 아닐까 싶다. 영장에 적시된 배임과 제3자 뇌물공여 등의 혐의는 행정행위의 결과로 형사범죄가 될 수 없다는 법조 일각의 견해도 있는만큼 법리 다툼의 여지가 적지않다. 털릴대로 털린 그에게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는 점도 고려될 터이다. 100% 결백을 주장해온 그가 권성동 의원에 비교되는 것도 지지자들에겐 치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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