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필요한 시대
스승이 필요한 시대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3.02.19 16: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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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인물학 전문가(Human Explorer) 홍승완의 `삶을 바꾸는 두 가지 만남, 사사와 사숙'이란 부제의 `스승이 필요한 시간' 마지막 장을 덮었다. 훌륭한 스승은 그 삶, 그 자체가 최고의 학교라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인도 뱅골 지역 출신으로 불교 스승이며 학자인 아나가리카 무닌드라(Anagarika Munindra)는 단 한 번도 본인 소유의 절이나 수행 공간을 가진 적 없는 청빈한 사람이다. 그가 머무는 곳 그대로 교육의 장소이고 성전이며 언행 모두가 잠언이다.

스승이 사라진 시대, 뜬금없는 스승 타령인가 하겠다. 오랜만에 산행하고 내려오는 길 가깝게 지내는 친구와 전화 연결이 됐다. 생태 강사로 활동하는 `연꽃피는다랑이' 대표이다.

큰산개구리(과거에는 북방산개구리로 불림)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상당산성 북문 너머로 이동할 계획인데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한옥마을 장수장에서 합류했다. 자리를 잡고 앉는데 뒤따라 들어온 후배 남편 일행이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 인사를 나누는 중에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했다. 서 샘이 근무하는 청석고 졸업생인 제자는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다. 제자가 스승에게 유은실 작가의 소설 『순례 주택』을 건네면서 소개하는 장면이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제자는 서 샘을 친부처럼 따르고 서 샘 또한 친자처럼 아낀다고 했다. 막걸리와 파전 사이로 흐르는 사제지간의 대화가 구수하고 달큼하다.

북문 뒤 다랑이논으로 내려가는 길, 멀리서 포르릉, 꼬르륵 마치 아기 기러기 소리 같은 울음이 들린다. 넘어질 듯 부리나케 달려가는 이 샘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느라 삭정이 같은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때마침 짝짓기 하는 장면을 목격하곤 한 시간 넘게 요지부동이다. 맑은 콧물이 뚝뚝 떨어지는 데도 미동도 없이 카메라에 담는 모습이 감동이다.

후배가 옆으로 다가가 손으로 가리키며 너무도 해맑게 묻는다.

“언니, 지금 개구리들 성교하는 거예요?”

터질 듯한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며 촬영을 방해할까봐 조용히 산비탈을 내려왔다.

생태숲 교육을 받는 어린 제자들에게 동면을 잘 마친 큰산개구리 깨어난 소식을 전해주려고 혼신을 다해 촬영하는 모습에서 스승의 참모습을 읽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인간의 영혼은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서 샘이 제자에게 아버지 같은 스승이고 생태숲 이 샘이 어머니같은 스승이듯이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의인 몇몇의 스승이 있어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헤매지 않고 바른길을 걷는 제자들이 있다.

얼마 전 수업 나가는 학교 근처에 제자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흐뭇하게 바라보다 돌아왔다.

`서울대 의대 합격 한○강'

수업 전에 늘 운동장을 서너 바퀴 돌고 들어와 특별히 기억하는 제자이다. 운동을 하면 키도 크고 공부도 잘된다며 야무지게 말하던 그 제자가 자신의 목표를 이룬 듯하다.

스승에는 직접 만나서 가르침을 받는 사사(師事)와 책과 작품을 통해 마음으로 본받는 사숙(私淑)이 있다. 직접 만나든 작품으로 만나든 스승의 1차 덕목은 인덕만리(人德萬里) 인품이다. 평범한 교사는 입술로 전하지만 훌륭한 선생은 몸으로 보여준다. 그날 서 샘은 위대한 스승의 롤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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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2023-10-06 16:38:48
시인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