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와의 이별
룰루와의 이별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3.02.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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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룰루가 우리 집에 온 지 십여 년이 되었다. 정이 들대로 든 강아지다. 오래전 머니라는 강아지가 마당 한 쪽에 잠들면서 백구에게 심통을 부리는 것을 보고 유기견보호소에서 자그마한 몸에 금색의 윤기나는 골든 리트리버 룰루를 입양했다.

온화한 성격의 룰루는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귀티가 은은하게 흐르는 인상이 귀여움을 받을 만했다. 백구도 새로운 식구가 된 룰루에게 잘 대해주어 함께 어울리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룰루에게 백구는 항상 인자한 어른이었으나 하나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백구는 나무로 된 현관에 올라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는데 이를 어기면 무서운 눈초리와 목소리로 룰루를 얼어붙게 하였다. 백구의 꾸지람에 룰루는 이내 풀죽은 모습으로 자기 집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밖은 내다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백구가 심심할 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룰루에게 다가가 발짓하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괜히 툭툭 건드리면서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백구가 제 집안에서 뻣뻣하게 굳어 숨을 거둬 사라져가자 이제부터 룰루의 세상이 되었다. 같이 놀던 백구가 보이지 않자 꿈에 그리던 현관에 올라 마당을 내려다보며 자기방식대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룰루에게 최고의 즐거움은 앞산을 걷는 산책이었다. 외출용 입마개를 하려면 몸부림을 치며 거부하더니 삼일째가 되어서야 룰루 입에 쉽게 씌울 수 있었다. 룰루는 조용히 있다가도 산에 가자고 하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했다. 집을 나서자마자 뛸 듯이 골목을 걸어가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얼마나 열심히 걸었는지 한참 동안 숨을 가다듬느라 애썼다.

룰루는 집에 낯선 사람이 왔을 때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문밖에 있는 사람에게 크게 짖지도 않고, 집안에 들어서는 사람도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낯선이의 낌새가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가차없이 물어 놀라게 했다.

그런가 하면 룰루의 특이한 행동으로 땅을 파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 화단 위에 빈틈이 있다든지, 마당 어느 곳에 작은 틈이 있으면 그곳을 밤과 낮 가리지 않고 팠다. 입을 사용해 흙을 헤집는 것을 보면 지치지도 않는지 참 신기하다. 땅 팔 때도 화초가 있거나, 화분 등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만 룰루의 과녁이 되었다. 룰루가 헤쳐놓은 흙을 정리하노라면 일을 저질은 룰루가 마치 죄지은 아이처럼 눈을 아래로 깔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통에 야단은커녕 헛웃음만 나온다.

이렇게 똑똑하고 믿음직한 룰루도 세월에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개의 평균수명이 14년이라는데 우리 집에 오기 전을 포함하면 살만큼 살았는지 어느 날 오후 앞산에 갔다가 오더니 마당에 엎드려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날 저녁 동물병원에 다녀온 룰루는 주는 약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하고 잠자는 듯이 눈을 감았다. 다리를 하늘로 길게 뻗더니 두 차례의 움직임을 끝으로 이 세상을 떠난 룰루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새벽 하늘 아래 장례식장으로 떠나는 룰루,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아내가 틈틈이 찍어놓은 룰루를 사진으로 만들어 마당 여기저기에 걸어두고 나서야 그 아픔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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