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뉘어 연결하다 - 연리근
나뉘어 연결하다 - 연리근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3.02.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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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흙 속 깊숙이 묻혀 있어야 할 알뿌리가 땅 위로 솟구쳐 올랐다. 수염뿌리 밑부분은 간신히 땅에 딛고 알뿌리는 공중부양 중이다.

싹이 튼 부분의 파란색은 봄을 맞을 반가운 기색을 띠고 자신에 찬 의지의 녹색을 가졌는데 한파에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올겨울이 엔간히 추웠어야지? 가느다랗고 뽀얀 흰 수염의 뿌리가 한 다발이다. 해파리의 촉수를 연상시키듯 흙 속에 있을 때보다 그 수를 늘리고 서로를 의지했건만 얼었다 녹은 알뿌리는 물컹거린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썼건만 올해는 꽃을 피우지 못할 운명인 듯하다. 흙이 들춰져 있다. 서릿발이 빠진 공간에 바람이 들었다.

흙 속이 아닌 곳에서는 알뿌리를 살찌우고 화려한 꽃을 피우지 못할 터. 평탄하게 잘 고르고, 병에 잘 견디고, 살찌울 수 있는 비옥한 조건을 만들고 심은 알뿌리가 땅속에 온전히 있질 못했다. 충분한 깊이를 두고 심었는데 덮어 놓은 흙의 양이 부족했나 싶다. 그간 공들여 키워온 알뿌리가 모두 썩었다. 물거품처럼 사그라지는 뿌리다.

오후가 되니 햇볕이 제법 따뜻하다. 등따습게 걷는 기분 좋은 오르막길이다. 가파른 언덕에 위풍당당한 고목이 잠시 걸음을 멈추라 한다. 몇 아름이나 될까? 세월의 무게인가? 그간 달았던 잎의 무게인가? 피우고 널리 퍼트린 씨앗의 무게인가? 높고도 넓게 퍼지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거대하나 기품있게 하늘을 받친 듯, 땅과 하나 되어 때를 기다리는, 단연컨대 자란 곳의 이야기, 세상의 이야기를 모두 품은 용목이다. 거대하고 육중한 아름드리나무는 잎을 모조리 벗었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고 온전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왕성하게 뻗은 잔가지를 사방으로 뻗치고 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이 배경이다. 턱을 한껏 들춰 걷는 발걸음은, 그래서 한세월이다. 한 걸음 띄어 내디디고 다음 걸음은 잊었다.

오르막길의 끝에 선, 눈에 강인한 생명을 땅에 의지하고 있는 나무 두 그루가 든다. 뿌리는 온전히 흙 위로 드러나 있다. 꿈틀거리듯 휘감지 않았다. 정갈하게 서로를 의지하듯 곧게 뻗었다. 돌이 있으면 돌을 비켜 뻗었다. 그리고 두 그루의 나무는 뿌리가 닿아 교감하고 하나의 뿌리가 되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이었다.

세월이 더해감에 흙은 깎여나갈 것이다, 한 줌의 흙이 아쉬울지언정 흙이 채워지길 기다리지 않았다. 뿌리는 쳇다리가 되고 쉬어가는 나그네의 의자가 된다.

평탄하지 않은 곳에 뿌리를 내렸으니 무엇인가는 의지했어야 했을 터, 벗이었다. 위치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서로가 같은 처지에 같은 하늘을 이는 벗이다.

무릇 지구상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는 꽃을 피워야 하지 않을까?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가 있을까? 그런데 이 나무의 꽃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제구실을 다 하고 바닥으로 수북하게 떨어져 있을 때조차 시큰둥하다. 워낙 높은 곳에서 꽃을 피우니, 애써 보려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리저리 부는 바람에 잎자루에 붙은 몇 개의 잎과 몇 개의 열매가 붙어있다. 작년 봄에 엄동을 겪고도 무척이나 많은 꽃을 피웠던 거구나?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는 이들을 불러들였다. 구태여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선보이지 않고도 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세월이 더해가며 더 많은 사람에게 그늘을 선사할 나무, 청주향교에 있는 느티나무다.

나뉘어 있던 것이 하나가 되었다. 줄기와 가지는 둘로 나뉘어 자라고 있었으나 뿌리가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다. 비탈이 심한, 평탄치 않은 조건을 이겨나가는데 서로가 의지가 되어주었다. 같은 땅 위에 같은 하늘을 이고,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드높은 하늘로 곧게 뻗은 기상을 품고, 나뉘어 있음에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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