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사회와 치료법
병든 사회와 치료법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3.02.0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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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뉴스를 보는 것이 고통이 된지 오래다. 반복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보는 것도 지쳤지만 더욱 걱정되는 것이 있다.

바로 모든 사회적 문제들이 정치적 진영 논리로 해석되어지고 있는 점이다. 정치가 대중들의 실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모든 이슈에 대해 시비와 이해를 따지지 않고 오직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진영 논리에 따라 정의와 불의를 나누고 있다.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들을 가려내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에 정치적 판단이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필자의 판단이 틀렸다. 언론 매체의 기묘한 논조와 과격하고 편향적인 댓글들 그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유족들 앞에서 버젓이 정부를 찬양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한없는 절망감을 감내해야 했다.

건강한 담론이 필요한 시대이다. 정치적 진영 논리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 자체에 다가서는 담론이 풍부해야 한다. 담론이 사라지면 정의가 사라지고, 정의가 사라지면 상식이 사라진다. 정의와 상식이 사라진 시대를 우리는 겪어 왔지 않은가. 그 어둠의 시대를 빠져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 잊었단 말인가. 언론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 언론은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언론이 건강한 담론을 싣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대안이자 희망이다.

사람은 병 없이 살 수 없다. 병이 들 수는 있지만 나아야 살 수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병이 들 수는 있지만 기필코 나아야 한다.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도 병이 들어 낫지 못하면 불구자가 되든지 혹은 폐인이 되든지 혹은 죽기까지도 하는 것과 같이, 한 사회도 병이 들었으나 그 지도자가 병든 줄을 알지 못한다든지 설사 안다 할지라도 치료의 성의가 없다든지 하여 그 시일이 오래되고 보면 그 사회는 불완전한 사회가 될 것이며, 혹은 부패한 사회가 될 수도 있으며, 혹은 파멸의 사회가 될 수도 있나니, 한 사회가 병들어가는 증거를 대강 들어 말하자면 각자가 서로 자기 잘못은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하는 것만 많이 드러내는 것이며, 또는 부정당한 의뢰 생활을 하는 것이며, 또는 지도 받을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를 잘 받지 아니하는 것이며, 또는 지도할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로써 교화할 줄을 모르는 것이며, 또는 착한 사람은 찬성하고 악한 사람은 불쌍히 여기며, 이로운 것은 저 사람에게 주고 해로운 것은 내가 가지며, 편안한 것은 저 사람을 주고 괴로운 것은 내가 가지는 등의 공익심이 없는 연고이니, 이 병을 치료하기로 하면 자기의 잘못을 항상 조사할 것이며, 부정당한 의뢰 생활을 하지 말 것이며, 지도 받을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를 잘 받을 것이며, 지도할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로써 교화를 잘 할 것이며, 자리(自利) 주의를 버리고 이타 주의로 나아가면 그 치료가 잘 될 것이며 따라서 그 병이 완쾌되는 동시에 건전하고 평화한 사회가 될 것이니라.'(원불교 정전 제3 수행편 제15장 병든 사회와 치료법)

자기의 잘못을 먼저 살피고 부정당한 의뢰 생활을 하지 말며 정당한 지도를 잘 받고 잘 하고 자리 주의를 버리고 이타 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법이다.

대한민국은 훌륭한 역사적 경험이 풍부한 나라이다. 다시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뚝 일어서 있을 것이다. 필자는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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