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방렴
죽방렴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2.0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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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햇살을 받으며 남해 해안선 도로를 달린다.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가두었다가 필요한 만큼만 건진다는 죽방렴이 눈에 뜨인다. 이 죽방렴은 자연이 주는 만큼만 받으며 만족해하던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예스러운 어업이다. 얼마 전 뉴스에 옛것이라 전통을 계승하려고 국가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급 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싶었다.

해안가 마을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수십 년째 죽방렴을 통해 어업을 하고 있다는 어부를 만났다. 죽방렴 어업형태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었을 뿐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새롭다.

죽방렴은 간만의 차가 크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V자형으로 참나무 말뚝을 박고 대나무 발을 엮어 둘러친 뒤 V자형 끝에 둥근 임통을 붙인다. 임통은 밀물 때 열리고 썰물 때 닫히는데 그때 들어온 고기를 목선을 타고 들어가 필요한 만큼만 건져온다고 한다. 여러 가지 물고기가 잡히지만 주로 멸치가 80% 이상이란다.

죽방렴을 통해 어획된 물고기는 몸에 상처가 없어 비린내도 적고 신선해 미식가들의 횟감으로 선호도가 높단다.

건조한 멸치의 몸값도 일반 멸치보다 비싸지만, 찾아오는 이가 있어 선대로부터 해오는 이 일에 만족하다며 열심히 설명하는 어부의 이야기를 듣는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어릴 적 보았던 추억이 나를 한 마리의 연어로 만들어 내가 놀던 개울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계절이 지금쯤이 될 것 같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고기를 잡기 위해 개울가에 물살이 세고 수심이 얕은 곳에 八(팔)자로 돌담을 물 높이만큼 쌓는다. 좁아진 끝을 싸리나무로 엮은 발을 물결 반대 방향으로 바닥에 비스듬히 누인다. 반은 물속에 반은 물 위에 뜬다.

물결 따라 오가며 노닐던 고기가 이곳까지 오면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물이 발에 막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크고 작은 물방울로 변해 발 위에서 몸부림을 친다. 아무리 힘센 녀석이라 할지라도 다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물의 몸짓에 맞아 죽는다. 동트기 전에 건져온다. 겨울에는 고기를 그렇게 잡았다. 지금 생각하니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 마을 고기잡이도 재래식 어항이라기보다는 죽방렴이라 부르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또 있다. 발에 막혀 튀어오를 때 내는 요란한 소리와 하얀 물보라의 몸짓은 장관이다. 겨울이면 튀어오른 물방울이 얼음되에 쌓이면 멋진 작품으로 보였다. 밤새 만든 예술작품 위에 햇살이 내려앉으면 엄마 품처럼 포근한지 스르르 녹아 본연의 물로 돌아온다. 참으로 신비스러웠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내가 놀던 개울가가 오늘따라 보고 싶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자연에서 생활의 지혜를 배워가며 사셨던 선조의 흔적이 오늘따라 이토록 아름답게 보일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평범한 사물도 시간이 흐르면 제 나름의 사연을 품는데. 하물며 수수만년 다듬어지지 않은 소박한 모습을 간직한 죽방렴이 풍기는 묵은 이야기가 어찌 마음을 움직이지 않겠나.

이번 여행은 세상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옛 방식을 고수하며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귀히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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