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것에 대하여
버릴 것에 대하여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3.02.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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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어느 날이었다. 책상 서랍 속에 들어 있는 줄만 알았던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야릇한 당혹감이 만석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기억을 잘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온갖 서랍을 뒤져가며 찾아보았으나 물건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놓아두었는지 혼란이 일기 시작하였다.

만약 지금이 물건을 찾지 못하면 새로 구입하거나 다시 장만해야만 하는 물건이었다.

또한 그렇게 된다면 그 물건은 진작 버려졌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당장 필요로 하는 물건이기에 시간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가슴에는 조급함과 갈등이 충돌을 일으키며 공연히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어디에 두었지 어디에 두었지 하면서 되묻고 되물어도 기억은 대답이 없었다.

만석은 평소에 물건을 아무 이유 없이 버리지 않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물건이 마냥 있기만 하면 언젠가 어디에 쓸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두었을 거라는 짐작이 갔다.

만석은 한참을 뒤적거리다 결국은 찾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더 큰 것을 잃기 전에 바삐 서둘러 그 물건을 구하러 나가야만 했다. 만석은 가는 도중에도 곰곰이 머릿속에서 찾아보고 찾아보아도 물건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간신히 일을 마친 후 다시금 미련에 방안을 둘러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어느새 벽이 사방으로 두꺼워져 있었다. 갈수록 방안은 좁아만 가고 한쪽 구석엔 옷들이 철을 모르고 어수선하게 걸려 있는데 그중에는 몇 년째 입지도 않은 채 걸려만 있는 것도 있었다. 게다가 여기저기엔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름 모를 박스들이 몇 층 높이로 쌓여 있었고 책장엔 케케묵은 책들이 마냥 책꽂이에 평생을 눌러앉은 것처럼 죽치고 있었다.

또한 책상과 가구서랍엔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가득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하니 이런 상황 속에서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혼미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런 까닭에 정리될 물건은 정리되어 버릴 것은 버려졌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것을 어떻게 언제쯤 왜 버려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만석은 이런 원인이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만석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었던 것이었다.

버리지 못하는 집착이 일상 속에서 굳어진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심코 툭 던져놓은 물건들은 쌓여만 가는 데 쓰일 곳도 모르면서 언젠가는 어딘가에는 쓰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대한 생각과 버리기가 아까워 마냥 두고 보자는 생각, 쓸모를 잃었는데도 처분하지 못하는 생각 등이 지금의 상황과 분위기를 만든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뒤 우연히 그 물건이 눈에 띄었을 때 반가움보다 왠지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물을 대하는 가치관이 다양하다.

하나는 사람들이 그 사물을 어찌 대하든 그의 인격존중이고 또 하나는 그 사물의 존재를 어찌 생각하는가이다. 그래서 누구는 같은 사물을 놓고 쓸모없이 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쓸모 있는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물이 존재의 가치를 잃고 버려져야 할 물건인지 아니면 유지해야 할 물건인지는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지시켜 줄 것이다.

때론 얻기 위해 살기도 힘들지만 버리지 않고 살아가기도 어려운 일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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