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창백한 푸른 점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3.01.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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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새 학기 첫 시간이면 학생들에게 빈 바구니를 보여준다. 바구니에 채워 넣고 싶은 것들로 새해 다짐을 나누는 시간이다. 좋은 책, 예쁜 말(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등등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책을 넣으면 책 바구니, 꽃을 넣으면 꽃바구니. 그런 다음 자기 발밑에 떨어진 쓰레기를 하나씩 갖다 넣어보라고 한다.

“꽃바구니”

“쓰레기 바구니”

짧은 침묵을 깨고 사태를 파악한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첫 시간을 연 토의 주제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네 명씩 모둠 토의를 마련하고 각 조에서 찾아낸 내용들을 정리하면 화들짝 놀랄 비유들이 많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우리 사는 지구를 밝히는 항성, 태양이라는 비유다. `스스로 빛을 발하면서도 다른 행성도 빛나게 하는 삶, 나아가 태양 주위를 자발적으로 공전하는 여덟 개 행성의 존경까지 받으니 태양이 그 충분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빛을 발하면서도 남도 빛나게 하는 삶, 비유 스케일도 광의적이다.

스스로 빛나는 것은 항성이고 항성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은 행성이라니 생각 없이 밤하늘에 반짝이며 빛나는 별'이라고 표현했다가는 멀티 상식 풍부한 학생들에게 질타받기 십상이다. 말이 그렇지, 문명화된 시스템에서 항성처럼 산다는 일은 쉽지 않다. 나 역시 삶의 좌표를 하늘에 둔다. 치장 없이도 맑고 높고 푸르른, 무봉無縫상태의 저 원시의 하늘처럼 사는 일이 인생 후반기 지향점이다.

최근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 인용된 부분을 연거푸 만났다. 가장 널리 읽힌 과학책의 저자로 유명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은 인간 존재의 미미함을 일깨웠다. 우주탐사선 보이저 2호가 태양계 외곽인 해왕성 궤도 밖에서 찍어 보낸 행성은 `창백한 푸른 점' 지구다. 이 작은 점을 보노라면 인간이 이 우주 만물의 척도라는 헛된 망상을 접을 것이다. 천체를 알면 알수록 그야말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무한대로 펼쳐진 광활한 이 우주에서 보일 듯 말듯 반짝이는 푸른 점 하나 지구, 그 사진이 우리에게 일으킨 파동은 굉장했다.

팀 마샬은 『지리의 힘』 을 통해 인류는 우주공간으로 올라가 보기도 했고, 밀리미터를 무한대로 바꾸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시 지구로 내려와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땅의 지리도 정복하지 못하면서 그것과 겨루려는 인간의 본성 또한 정복하지 못한 상태라는 이유다.

동시성인지 연거푸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문장과 마주친다. 보이저 2호가 찍은 지구 사진을 띄워놓고 심규선 작사, 작곡의 `창백한 푸른 점'을 듣는다.



`아주 멀리 있는 별들의 붕괴와 탄생을 우리가 알아챌 수 없듯이

바로 곁에 있는 서로의 분열과 탄식도 우리는 알아챌 수 없었네.

너는 존재하네. 짙고 검은 공허 속에서 나의 창백한 푸른 점으로'



우주에서 바라보면 창백한 푸른 점 속 인간은 만물의 근원인 원소조차 못 되는, 찰나에 훅 사라질 운명이다. 뭘 더 갖겠다고 헐뜯고 비방하며 유치하게 `땅 긋기' 전쟁이란 말인가. 태양처럼 스스로 빛나면서도 주변을 빛나게 하는 항성, 그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도 못 되는 미물인 주제인데 말이다. 올 해 우리 공통의 빈 바구니엔 지구본을 넣어야 한다. 함께 창백한 지구를 되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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