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쥐고 평화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주먹 쥐고 평화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 승인 2023.01.29 16: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저는 한때 사극 마니아였습니다. 2년 6개월 동안 했던 사극을 본방송도 보고 재방송까지 볼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재미로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공격하라!”라고 외치는 장군은 말 위에서 칼을 빼 듭니다. 하지만 정작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은 장군이 아니라 병사들입니다.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쓰러집니다. 전우의 시체를 밟고 앞으로 달려가 성벽을 기어오르고 성 위에 올라가서 상대방과 싸웁니다. 어느 정도 승기를 잡은 다음 장군은 말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다시 칼을 빼 들고 승리를 알립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환호하며 좋아합니다.

이러한 전쟁은 누가 일으켰을까요? 공격하라는 명령에 따라 달려 나가 화살에 맞고 쓰러진 병사들이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위정자들의 욕심 때문에 일어납니다.

조금 더 넓은 땅을 빼앗고자 자기편과 상대편 병사들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병사들은 장기판의 장기알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왜 수많은 사람이 죽어야 할까요?

그런데 이런 전쟁이 전근대 사회에만 있던 것이 아닙니다. 요즘도 전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정자들은 늘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하면서 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를 위해 무기는 더 첨단화되고 강력해집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연습과 준비를 하면서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여섯 사람》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평화롭게 살 땅을 찾아 여섯 사람이 길을 떠납니다. 드디어 땅을 찾았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이 생산한 것과 땅을 뺏으러 올까 봐 걱정합니다. 결국 군인들을 양성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쳐들어오지 않자 자신들이 다른 마을을 쳐들어가서 땅을 빼앗습니다. 여섯 사람의 마을은 점점 커집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보초를 서던 병사가 있습니다. 강가에서 날아오른 새를 잡으려고 하늘을 향해 활을 쏩니다. 새를 맞히지 못한 화살이 상대편으로 날아가고 상대편이 공격해 왔다고 여긴 두 마을엔 전쟁이 벌어집니다. 결국 여섯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여섯 사람은 다시 평화롭게 살 땅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책장을 덮고 나니 어이가 없고 화가 납니다. 전쟁을 일으킨 여섯 사람은 살아남고 다른 사람들만 죽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해놓고 `평화롭게 살' 땅을 찾아 나선다니 정말 못된 사람들입니다.

평화는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평화를 이야기하며 언제든지 상대방을 때리겠다는 마음으로 주먹을 쥐면 곤란합니다. 상대와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주먹을 펴고 팔을 벌려 상대를 안아줄 수 있는 자세여야 할 것입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나라 혹은 다른 사람을 `적'으로 삼는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랍니다.

지금 전쟁 중인 곳에서는 물론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사회 단위에서도 그래야겠습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를 지키는 길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