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놀이
마당놀이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3.01.26 1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설 명절이 지나갔다. 명절 끝은 늘 마음이 허전하고 허전하다. 명절이 명절 같지 않고 쓸쓸하기만 하다. 책을 읽어도 tv를 보아도 마음 둘 곳 없어 할 일도 없는 마당으로 나갔다. 바람이 쌀쌀하다. 그래도 방안에 있기에는 답답하여 바람이라도 쐬어 볼까 싶었다. 그런데 마당에 장작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초겨울 참나무를 사놓고 쪼개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허전함을 풀어낼 것을 찾았다. 그래 오늘은 장작이나 패면서 신명나게 한바탕 놀아 볼까싶다.

한겨울 장작패기놀이다. 남편은 도끼로 나무를 쪼개고 나는 쪼개 놓은 나무로 쌓기 놀이를 한다. 통나무를 사다가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통나무를 도끼로 패서 아궁이 한쪽에 쌓아놓으면 마음이 먼저 따스해진다. 한겨울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황홀하다.

마당에서의 놀이는 계절과 상관없이 재미있다. 봄과 여름에는 풀들과 숨바꼭질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마당은 하얀 도화지 같아 햇볕과 바람의 물감으로 꽃과 나무를 색칠해야 좋은 그림이 완성된다. 때로는 맘에 들지 않아 나무를 옮겨 심고 꽃의 색감과 피는 시기를 맞춰야하는 고난이도의 그림을 그려야하는 화가가 되어야 좋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 한번 그린 그림은 완성이 아니다. 계절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야하고 해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야한다. 우리 집 마당에 어떤 색의 어떤 꽃이 어울릴지 늘 고민한다. 창작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것 이다. 마당에서 재미있게 놀려면 이쯤은 해야 한다.

우리 전통 마당놀이는 서양의 공연무대와 달리 공연자와 관람객이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집에서 하는 마당놀이와 우리 민족의 마당놀이가 외형적으로는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본질은 통하는 것 같다. 함께 즐길 수 있어 재미가 있다. 집에서 하는 마당놀이는 북도, 장구도, 꽹과리도 없다. 구경꾼도 없다. 우리는 구경꾼이아니라 주인공이다. 한쪽에서는 쿵쿵 도끼질을 하고 나는 쪼개진 나무를 높이높이 쌓아올린다.

마당에 눈이 내리는 날은 마당놀이가 더 재미있다. 나무위에 장독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사진으로 남기고 큰길까지 비질을 하면서 땀이 나도록 놀이에 푹 빠져 있다. 이렇게 신명나게 한바탕 놀고 나서 마시는 커피한잔은 정말 달콤하다. 삶에 대한 감사가 만족하도록 흡족하다.

내 울타리에서 즐길 수 있는 사소한 즐거움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생각해보면 이제 크게 의미 있는 일도 성취하고자 하는 일도 줄어든다. 숲에 살다보니 이 숲이 얼마나소중한지를 실감하며 살고 있다. 세상에 크게 기여 하는 삶, 거창한 일이나 계획은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일은 줄여 보려고 한다. 프라스틱 함부로 버리지 말기, 쓰레기 줄이기를 생활에서 노력하고 있다.

살다보면 마음에 찌꺼기가 생긴다. 그런 우울한 기운을 한바탕 땀을 흘리며 놀고 나면 몸속의 찌꺼기가 다 빠져나가고 맑은 기운으로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나는 울도 담도 없는 이 산속의 영주다. 영주에게는 누릴 수 있는 권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잘 가꾸어야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권력을 누리려면 의무를 더 잘 지켜야한다. 장작패기놀이를 하며 놀았더니 웅크리고 있던 우울함이 다 녹아 내려갔다. 뭉쳐있던 체증이 내려가니 시원하다. 명절 끝의 쓸쓸하고 우울하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얼~쑤, 좋~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