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다
눈이 부시다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3.01.1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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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눈이 부시다. 그런데도 고개를 돌릴 수도 잠시라도 눈을 감고 외면할 수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양지식물이라도 된 듯 고개를 돌려가며 눈이 부신 곳을 향해 바라기를 하며 벙실거리느라 입 꼬리가 귀에 걸린다.

손자 녀석들을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 없이 마음껏 미소를 짓다 보면 어느새 혼탁한 영혼이 아기처럼 맑고 순수하게 정화가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가을 햇살 좋은 날 첫 손자 주원이가 태어나고 봄 햇살 따사로울 때 작은 손자 서원이가 우리 곁에 왔다. 발그레해 꼬물거린 던 그 여린 생명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오래전 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과 감동이었다.

주변에서 내 자식을 키우며 바라볼 때보다 손자 녀석들을 바라보는 것이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했을 때 나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설마하니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내 금쪽같은 자식과 비교가 되랴.

그런데 나도 그네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손자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왜 그리 눈 부시고 입 꼬리는 주책 맞게 저절로 귀에 걸리는지 손자 녀석들의 마법에 걸려 들은 것이 분명했다.

어디 그뿐이랴. 난데없이 이 나이에 질투심도 생겨 버렸다. 큰 녀석이 어린이집을 다니며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는지 한동안 여자 친구 이름을 부르며 좋아 좋아를 외치고 다녀 은근히 할미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런 녀석이 어느새 한 뼘쯤 자라 말문이 트이더니 세상 모든 게 궁금한가 보다. 요즘에는 엄마 껌 딱지가 되어 그 조그만 입으로 얼마나 조잘조잘 거리는지 제 어미가 대답해주고 들어주느라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단다.

돌이켜보면 내 자식을 키울 때는 더디 자라는 것만 같았다. 언제쯤 기저귀 떼고 걸어다니고 말을 할까 조바심을 냈었는데 손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마냥 신기하고 뿌듯해서 행복하다. 이래서 내리사랑이라고 하나보다.

요즘 나는 작은손자 서원이 에게 빠져 내리사랑을 증명하는 중이다. 작은아이는 큰아이와는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

심지어 이 녀석은 우는 모습도 사랑스럽고 귀여워 우는 표정을 보느라 달래주는 걸 잊을 때도 있다. 며칠 안 보면 눈앞에 아른거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동영상과 사진을 보며 히죽히죽 웃는다.

주원이와 서원이를 바라보면 언제나 눈이 부시다.

손자자랑은 돈 내고 해야 된다며 농담들을 하지만 돈을 내고라도 세상에 자랑하고 싶은 게 할미 맘인가 보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이 인간에게 왜 새 생명을 보내 기쁨을 누리게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내 자식을 기르며 미처 다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표현을 하며 황혼 길을 외롭지 않게 걸어가라고 한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설날을 앞두고 두 녀석 설빔을 입힐 생각에 설레고 제법 자란 큰 손자에게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며 무어라 덕담을 해야 되나 하루 종일 생각하며 웃었다. 손자들을 향한 마음이 내리사랑이든 짝사랑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 가족에게 천사 같은 새 생명이 오고 그 아이들을 기르며 딸아이는 내가 저희를 기르며 느낀 감정과 사랑을 터득할 것이다. 그리고 내 나이쯤 어느 날에는 이 어미와 똑같은 할머니가 되어 내리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이를 바라보면 왜 그리 눈이 부신지 저절로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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