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유
사랑하는 이유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3.01.1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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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좋은 노래라며 지인이 동영상을 보냈다. 오래전 고인이 된 미국의 컨트리 가수 짐 리브스의 `사랑하는 이유'를 장년의 남자가 부른다. 저음의 목소리는 따듯하고 부드럽다. 가슴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멜로디와 가사를 음미하며 반복해 듣는다. 시간 속에 묻어 둔 옛 추억과 잊고 있었던 것들을 소환하게 하는 올드팝이다.

60년대 초, 농촌에 살면서 아버지께서 몇 년 동안 유선방송실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근동의 집집 마마 스피커를 달아주고 새벽 시간에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트로트 레코드판을, 저녁 시간에는 아이들을 위해 동요가 담긴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나머지 시간에는 라디오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남들보다 먼저 노래와 가까워졌다. 팝송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건 70년대로 막 넘어서였다. 일본제품이었던 귀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선물 받고 밤이나 낮이나 끌어안고 지냈다. 한밤중에 듣는 팝송은 나를 달 뜨게 해서 잠들지 못하게 하고 생각을 웃자라게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듣는 노래는 새롭게 다가온다. 학생 때 읽었던 `부활'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느낌이 완전히 다르듯 나이가 무거워지면서 멜로디보다는 가사에 감정이 많이 실린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잘 이해해 주기 때문이지/ 무슨 일을 하고자 하든 이해해 주기 때문이야/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손을 내밀어 주는 당신/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신이기 때문이야/ 세상 사람이 뭐라 해도 난 알아, 당신의 사랑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결코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야/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야/ 당신 옆에 나란히 걸을 때는 언제나 그렇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내일이 밝아지기 때문이고 행복의 문을 열어주고 당신의 사랑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수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야'



푸르던 시절 누구나 열망하는 사랑이다. 상대를 위해 조건 없는 인내와 헌신으로 나를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고독하다는 걸 중년이 지나 알았다. 연인이나 부부, 자식하고도 의견이 맞지 않아 마음 상하는 일이 한두 번인가. 사는 일이 어느 때에는 가슴에 피를 흘리며 인장을 새기는 것처럼 고통스러운데 변화무쌍한 삶의 한가운데서 변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자기만의 색깔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너도 한결같기를 바라지만 장마철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사람 마음도 수시로 변하는 걸 부인하지 못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서 듣다 보니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이제야 깨닫게 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가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믿어주고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용기를 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유령과 같은 사랑으로 지켜주었기에 자아를 발전시키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진정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힘들 때마다 손을 내밀어 주었던가. `사랑하는 이유'가 끊임없이 반문하게 하고 멀어져간 뒤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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