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장군 이사부는 정말 충북지역에 왔을까?
신라장군 이사부는 정말 충북지역에 왔을까?
  • 양병모 충북문화재연구원 연구원
  • 승인 2023.01.15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양병모 충북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양병모 충북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우리는 한국 고대사의 유명 인물인 신라장군 이사부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고 있다. 역사시험 문제에 자주 출제되기도 하고, 국민동요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과 `독도는 우리 땅' 노래 가사에서도 `신라장군 이사부'가 나타난다.

그만큼 2000년대에 사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인물인 이사부, 1500년 전 신라의 고대국가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한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이사부이다. 옛 기록을 찾아보면 이사부의 이름을 `삼국사기'에는 異斯夫(이사부), `일본서기'에는 伊叱夫(이사부), `단양 신라적성비'에는 伊史夫(이사부) 등으로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사실 필자의 연구 관심 분야인 남한강 상류지역의 신라 진출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던 중 단양적성(사적 265호) 내 단양신라적성비(국보 198호)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적성비는 신라가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적성(현 단양군)을 공략에 공을 세웠던 이 지역 출신 야이차의 공을 포상하고 나아가 이를 적성지방의 통치에 이용하기 위하여 세운 비로만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적성공략에 신라 출신 이사부와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도 확인되고 있다.

그러면 신라가 이 지역으로 언제쯤 오게 되었으며 이사부는 무슨 이유로 오게 되었을까? 학계에서는 적성비는 대략 신라 진흥왕 12년~14년(551~553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고, 적성의 축성도 이 시기에 맞물려 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사부는 신라군의 총책임자인 병부령(541년 임명)으로서 적성공략을 위해 소백산맥의 죽령고개를 넘어 군사를 진두지휘 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흥왕 11년(550)에는 이사부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세종시, 증평군으로 비정 되는 백제와 고구려의 성을 함락한 기사도 확인되고 있다.

아쉽게도 이사부는 언제 태어났는지 생년몰일에 대한 기록을 현재 찾을 수가 없다. 학계에서는 이사부의 나이를 20~30대에 추정하고 있고, 소지마립간 13년(512) 하슬라 군주가 되어 우산국(현 울릉도)을 정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사부는 단양지역을 공략한 시기는 신라 병부령이 된 이후 6세기 중엽 40~50대에 신라군의 책임자로서 이 지역으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으로, 단양적성-단양신라적성비-이사부-김무력 등 충북지역의 문화유산과 이와 관련된 인물을 바탕으로 문화유산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며내면 어떨까?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지역을 조명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이제는 1500년 전 옛 단양의 모습을 충주댐 조성으로 인해 찾아볼 수는 없으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산과 남한강, 그리고 적성과 적성비를 보러 한번을 발길을 찾았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