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치와 살아내다
요리치와 살아내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01.1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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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명예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노래를 못하면 음치고 박자를 못 마치면 박치, 요리를 못 하면 요리치다. 얼마나 못하기에 치(癡)라고 하냐구?

결혼하고 얼마 안 돼 큰 처남이 놀러 왔다. 반가운 손님이라 저녁은 나가서 먹고 집에 와서 술 한잔했다. 집사람이 큰오빠가 결혼 후 처음으로 놀러 왔으니 대접을 한다고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차려왔다. 큰 처남은 일찍 결혼해 분가해 여동생의 음식 솜씨를 알지 못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밥상을 받고 몇 술 뜨더니 “봉희야, 이렇게 음식하면 소박받는데이. 요리학원 좀 다녀야겠다.” 오빠는, 이 사람은 잘 먹는다 말이야. 맛있어서 먹나? 신혼이니까 그냥 먹는 거지.

학교 급식은 아이들이 잘 안 먹는 편이다. 맛이 없으니까. 엄마가 집에서 해주는 반찬에 비하면 잘 먹기가 어렵다. 우리 애들이 학교에 갔다 와서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애들은 이상해. 왜? 급식을 잘 안 먹어, 맛없다고 안 먹어. 우리 애들은 학교 급식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 집에서 먹는 거보다 맛있으니까.

술을 진탕 먹고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해장이 생각난다. 얼큰하고 시원한 김칫국이 생각난다. 김칫국을 주문했다. 김칫국 등장. 한 숟가락 떴는데 도저히 먹을 수 없다. 시원한 맛이 나지 않고 닝닝하고 느끼하다. 색깔도 허여멀겋다. 맛이 왜 이래? 왜 어때서. 시원한 맛이 난다. 텁텁하고 이상해. 왜 그러지? 실력 발휘하느라 달걀을 하나 풀어 넣었는데…. 엄마가 끓인 국에 대해서 가장 잔인한 건 아들놈이다. 국을 끓여 주면 한 숟가락 뜨고 엄마 물 좀 주세요 하고 물에 밥 말아 먹는다.

가끔 초여름이 되면 호박잎이 생각난다. 된장에 고추, 호박, 마늘, 양파 등을 넣어 양념을 한 후 밥할 때 찌고, 밥솥이나 찜기에 호박잎을 살짝 쪄서 찜된장 곁들여 밥을 싸먹으면 별미다. 집사람에게 묻는다. 호박잎 할 줄 알아? 사람이 왜 호박잎을 먹어?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먹어보면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된다는 말까지 곁들여. 쉽네~ 밥상에 앉으니 된장은 있는데 호박잎이 없다. 호박잎 어디 갔어? 접시 위에 있잖아? 접시 위에 시커먼 덩어리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게 뭐야? 글쎄, 호박잎을 물에 넣고 삶았더니 흐물흐물해져서 건져서 꽉 짜 놨어. 환장할 노릇이다.

요리치의 하이라이트는 간장 게장이다. 간장 게장이 먹고 싶다고 하더니 담가보겠다고 나섰다. 될까? 게를 사다가 힘들게 다듬고 씻고 각종 재료를 넣고 간장을 끓이고 난리가 났다. 며칠 후 게장 먹게 일찍 들어오라고 한다. 일찍 들어가 밥상에 앉았다. 게장을 큼지막한 접시에 담아서 내오면서 한마디 한다. 게장 색깔이 이상해. 왜 이렇게 벌겋지? 아닌 게 아니라 게가 벌겋고 게살도 익은 것처럼 뭉글뭉글한 것이 일반적인 간장 게장과 다르다. 아무래도 익은 거 같다. 왜 이러냐고 했더니 친구가 시키는 대로 했단다. 친구가 뭐라고 했는데? 각종 재료를 넣어 간장을 끓여 부어서 며칠 후에 먹으라고 했단다. 친구는 당연히 간장을 끓인 후 식혀서 부을 거라 생각하고 “식혀서”라는 말을 뺀 것이다. 요리치는 친구가 시키는 대로 펄펄 끓는 맛있는 간장을 게에 붓고 이삼일을 기다렸다.

김칫국? 내가 끓인다. 호박잎? 내가 찌고 찜장도 내가 만든다. 얼마 전에는 간장 게장 담그라고 해서 게장도 담갔다. 냄새 나는 동태 매운탕 안 먹으려고 내가 끓인다. 질긴 오징어 볶음 안 먹으려고 내가 볶아서 오징어 소면 먹는다. 요새는 아구찜 먹고 싶다고 아구찜 해내란다. 요건 아직 실력이 부족해 못해 봤다. 요리치랑 살면 혹사당하며 살게 된다.

요리치랑 살면 좋은 점은 있다. 음식이 맛없으면 당연히 많이 안 먹게 된다. 음식량이 많지 않으니 성인병 걸릴 확률이 낮다. 그래서 비교적 건강하게 산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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