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의 기도
13월의 기도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3.01.08 18: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사방에서 함박눈이 내립니다. 보이지 않는 끝, 어딘가 닿아야 할 곳이 여기인가 봅니다. 여기 함박눈이 빛이 되는 찰나입니다. 하얀 꽃으로 세상은 눈부십니다. 영롱한 물빛으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13월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당신이 주신 사랑이 무엇인지. 이제 벅찬 기쁨으로 용서를 구하고, 바보처럼 고백합니다. 아주 오래 있어 줄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평생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소홀했는지 모릅니다.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세 살배기 아이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제 와 누군가에게는 미안하고, 누군가에는 평화로운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낮은 곳에서 부드러움을 배우겠습니다. 조용한 곳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그리고 갈등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충만한 사랑을 나누며, 따뜻한 밥 한술 입에 넣고 총각김치 통째로 아작아작 씹으며 구수한 된장국 떠넘기는 소박한 겸손을 배우겠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깊은 뜻을 모르고 세상과 싸우며 살았습니다. 제 눈으로는 도저히 세상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조리와 화해하는 일은 영원히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밤이 길고 낮이 짧은 시간을 견디며 꾸벅꾸벅 지냈습니다. 나와의 다툼이 때론 중력만큼이나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그리고 손자, 손녀를 위해 매일 같은 이유로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며 신에게 손 모아 기도했습니다. 정작 당신을 위한 기도는 한 번도 드린 적이 없습니다. 평생 지은 죄를 알게 될 때 할 말을 잃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도리를 다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온기가 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인 것처럼 간절히 당신에게 13월의 기도를 드립니다.
당신의 숨과 영혼을 놓치지 않으려/ 순간순간 긴장하겠습니다/ 신이 바라는 마음으로 살피겠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급하게 살아왔는지/ 왜 숨은 그림자처럼 살아왔는지/ 그래서 어쩌면 찬바람보다도 먼저 도착하여 진을 치고 살았을/ 위대한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부탁입니다/ 이제부터는 식사도 천천히 하시고 걸음걸이도 천천히 하시고/ 뭐든 천천히 하시면 좋겠습니다/ 빠름이 좋은 면도 있겠지만/ 어떤 일이든 한 번 더 생각하고/ 더디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부탁입니다/ 이제는 당신으로부터 의심과 경계를 버리십시오/ 당신만을 위해/ 좋은 옷도 사 입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드시고/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그래야 차갑고 거칠어진 당신의 손은 잡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당신의 희생이 바쁘게 살았기에 여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자유롭게 기쁜 미소를 보내십시오/ 나는 당신을 오래도록 더디게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에게 보답하지 못한 죄가 커서/ 그런 제 마음이 들킬까 봐/ 당신 곁에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늘 변명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늘 제 걱정뿐이었습니다/ 말없이 웃어주었습니다/ 어찌 당신의 사랑을 모르겠습니까/ 이제라도 당신을 그리며/ 당신을 위한 기도를 매일 드리겠습니다//
13월의 기도는 영원히 바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갚아가게 해 주시고, 어딘가 닿아야 할 곳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오롯이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약속하며,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시인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詩)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춤춰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