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쓴 인생 사명서
다시 쓴 인생 사명서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3.01.0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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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다.

사실 `참여한 적'이라기에는 아주 깊숙이 관여되었었다.

일반 과정, 지도자 과정, 실습 과정을 거쳐 그 워크숍을 이끌 수 있는 퍼실리테이터 자격까지 취득했으니 말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워크숍은 자신의 삶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제안한다. 이 여러 측면은 살면서 수행하는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직업이 교수인 나는 가족에게는 한 사람의 아내이자 자녀들의 부모이고 교회에서는 구역장, 다도 모임에서의 참여자이다. 이런 것이 일종의 역할들이다.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인생 사명서'를 적어볼 기회를 가졌다. 사명서는 영어로 `Mission statement'라고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명 즉 미션이 무엇인지 검토해보고 미션을 글이나 그림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 사명서다.

사명서 쓰기는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역할에서 듣고 싶은 찬사를 적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살아가면서 감당하는 역할이 바뀌기도 하고 듣고 싶은 찬사가 바뀌기도 하니 인생 사명서는 고정되지 않고 수시로 수정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명서는 주기적으로 갱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2023년 새해, 오랜만에 사명서를 꺼내어 읽어보았다. 16년 전 30대에 작성한 사명서에는 감당할 일들이 가득했다.

사명서라기보다는 해야 할 일 목록처럼 말이다. 지난 시간 일꾼처럼 이런 일, 저런 일을 해치우듯이 살아온 내 삶이 보이는 듯 했다. 부모님께 해드려야 할 일, 자녀에게 책임질 일, 교수로서 써야 할 논문과 그 방향까지 세세하게 기록한 그 사명서, 지금 읽어보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해드려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인생의 미션이라니…. 이것이 살아야 하는 사명인가? 의무와 책임을 다해 열심히 살았는데 대체 왜 서글픈 건가?

딸아이가 좋아하는 `알쓸인잡'을 함께 보다 그 서글픔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출연하는 천문학자가 말했다.

“내가 잘못한 점도 있고 내가 부족했던 점도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어제의 부족했던 것도 나고, 오늘 실수했던 것도 나고, 부족한 점을 메꿔서 내일 더 잘하려고 하는 것도 나고, 그러다 또 실패하는 것도 나고. 그런 모습 전부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지만 그런 나를 사랑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저는 그런 나를 사랑해요. 도마 경기의 선수인 내가 도마를 넘기는커녕 도약하다 넘어져도 심사위원인 나는 10점 만점을 줄 거에요. 남이 평가하는 나는 5점이나 7점이나 실격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나에게 10점이에요.”

중요한 성과를 내고, 기대하는 일을 완수해야 10점을 받는 내가 아니라, 좀 부족해도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자기는 자기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지난 16년간 그 마음은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살았다. 남에게는 수없이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로 재고 평가하는 나. 스스로에게 넌 지연이가 되기엔 너무 부족해라며 닦달하던 나.

사명서를 다시 썼다. 나를 더 알아보자고. 50년을 알았는데 지금도 모르겠는 나를 잘 들여다보자고 썼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점은 약한지, 어떨 때 힘이 드는지, 견디기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등등 새해부터 살아갈 삶의 미션은 나와 구체적으로 친해지는 것 그리고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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