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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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3.01.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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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오전 9시, 어김없이 교장실로 향한다. 묵시적 약속? 이기도 하지만, 꼭 어떤 사안이 있어서는 아니다. 교장선생님과 차 한잔하면서, 교육활동 이야기도 나누고, 요사이 아이들 실기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던가, 키가 부쩍 컸다는 둥 학교의 일상이 늘 화젯거리다.

“여긴 내 구역이니 내 뜻대로 하겠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교장실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핑계 삼아 항상 따뜻한 차를 준비하신다. 실제 바리스타 자격증을 갖고 계시니, 나는 매일 아침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대접받는다. 내려주시는 커피가 참 맑다.

오늘 아침 차담 자리에 막 앉으려 하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시선을 창밖에 두고 빙그레 웃으신다.

“교감 선생님! 저기 고드름 좀 보세요~.” 돌아보니 화단 소나무에 고드름이 한아름 매달려 있다.

“어? 고드름이 제멋대로 네요?” 나는 정말 요상하게 매달려 있는 고드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교장선생님께서도 흥미로운 표정이다.

요 며칠 정말 추웠다. 오늘 아침만 해도 등굣길에 실외 온도를 채크해보니 `-11'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이 정도면 혹한이다. 그래서인지 엊그제 내린 폭설로 소나무에 수북이 쌓였던 눈이 낮에 녹으면서 밤에 다시 얼어붙은 것으로 보인다.

대개 고드름은 처마 밑에서 땅을 향해 주렁주렁 매달린다. 물론 보통의 고드름과 달리, 천장에서 떨어진 물이 차곡이 얼어 기둥처럼 솟는 `역고드름'이란 것도 있다.

그런데 아침에 바라본 소나무 고드름은 일반 고드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역고드름도 아니다. 솔잎 줄기에서 몇 갈래로 나래선 고드름 줄기는 왼쪽 45도로 서너 개, 오른쪽 30도로 서너 개, 수직 방향으로 두세 개 등, 십수 개의 고드름이 각자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고집 세게 꼿꼿하다.

거참…. 어떻게 이런 일이? “교장선생님! 쟤들 왜 저럴까요? 제멋대로네요?” “그러게요. 어젯밤 바람이 세게 불던 거 같던데, 아마 이리저리 바람 부는 대로 방향을 잡은 것 같네요….” “꼭 우리 아이들 모습 같기도 하지요?” 하하하.

솔잎 한 줌에서 고드름이 참 제각기 만들어지기도 했다. 끝이 제법 날 선 게, 뾰족한 솔잎과 조형적으로도 잘 어울린다. 그리 굵지 않은 한 뼘 크기로, 자기편을 만든 것처럼 끼리끼리 조화롭다.

마침 아침 햇살이 쨍하다. 고드름이 햇살을 담아 청아하게 빛을 낸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선생님 한 분의 가르침에도 아이들은 참 다양하게 반응한다. 무심한 녀석도, 토라진 녀석도, 방긋 웃는 녀석도 있다. 하긴 정답이 무엇일까만, 한 덩이 솔잎 아래 각자 제 모습을 뽐내는 저 고드름처럼, 그런 모습이 또 우리 아이들 아닐까….

그래도 45도로 꺾여진 고드름은 참 생경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햇살을 받아 녹아내리면 45도의 고드름은, 그 모습을 또 새롭게 할 것 같다. 조금은 더 고개를 숙이겠지? 뾰족한 끝도 조금은 무뎌질 것 같다.

생각해보니 우리네 가르침과 , 아이들의 모습으로 영락없다. 그대로 보아주자! 45도로 꺾여진 모습이 어색하다고 미리 녹여낼 것도 없고, 또 그동안 보아온 고드름 모습과 다르다고 외면할 것도 없다.

냉랭한 고드름이 따스한 햇볕을 받고 모습을 다시 가지런하게 정돈하듯, 세상의 순리를 바르게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은 고드름처럼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정리해나갈 것이다. 그런 이유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하나 보다.

예술의 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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